[조경일 칼럼] 대표성이 보장돼야 건강한 민주주의, 다당제만이 정책경쟁 불러

포용의 정치를 위하여

정치에는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의 선택도 아니다. 오직 찬반과 협상이 있을 뿐이다. 정치를 옳고 그름의 성역으로 바라본다면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해야만 한다. 피아를 구분하는 정치는 갈등과 배제만 불러올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도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라는 행위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다만 ‘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권력구조가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개헌에 대한 요구가 높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에서 대통령제는 이승만 대통령의 3.15부정선거 등 불법선거와 독재정치,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독재, 5.18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군사정권을 만들었다. 모두 시민들의 피를 흘리게 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상이다. 물론 이것이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공업 우선 경제정책을 펴면서 권력과 기업이 결탁한 ‘재벌’을 만들어냈다. 재벌이 권력에 로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 권력이 재벌에 로비를 요구하는 구조인 셈이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정경유착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결국 국정농단 사태와 현직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과 자질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사람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던 지난한 제도의 문제를 우리는 파헤쳐야 한다. 제도로서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리더가 나와서 좋은 정치를 해줄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영웅주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국민들에게 다시 촛불을 들지 않게 해야 한다.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갈등과 반목만 넘쳐난다. 한 진영이 집권하면 상대 진영의 발목을 잡는 정치는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권력구조의 문제이다. 포용과 협치가 없는 정치는 건강할 수가 없다.

포용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화와 타협이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작동하고 권력분점으로 연결되는 그런 대화와 타협 말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가 작동해야만 한다.

대표성이 보장돼야 건강한 민주주의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등 흔히 우리가 부러워하는 정치선진국들은 모두 다당제 국가이다. 여러 정당이 의석을 고루 나눠 갖고 있다. 한국처럼 양당이 아닌 다당제가 작동하며 정부도 연정을 통해 구성된다. 바로 선거제도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거대양당이 독식하는 구조다. “못해봤자 2등인데 뭐”라는 사고가 고착화된 거대양당은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거대양당은 서로 국민 모두를 대변하겠다고 말한다. 모두를 대표하겠다는 말은 아무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가 끝나면 여당은 야당을 배제하고, 다시 야당은 여당의 발목을 잡는다. 대화와 타협은 없다. 다당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의 소선거구제 선거제도는 실제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득표율과 의석률은 전혀 동일하지 못하다. 영남에서 20%지지받은 민주당은 겨우 1개 의석을 가져가고, 호남에서 20% 지지받은 보수당도 겨우 1개 의석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승자독식이다. 대표성도 없다. 1등을 찍지 않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득표율에 비례하게 의석률을 배분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인 제도이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 포용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일등이 전부를 가져가는 제도에서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배제와 횡포만 있을 뿐이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정당이 난무 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다. 독일과 스웨덴도 여섯 이상의 정당이 의석을 고루 나눠 갖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을 민주국가가 아니라고 말 못하지 않는가.

조경일 작가/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다당제만이 정책경쟁을 가져온다. 현재처럼 거대양당구조는 정책경쟁이 아니라 인물경쟁 뿐이다. 국민들이 비판하는 국회의원 특권도 다당제로 정책경쟁이 가능해지면 사라질 것이다. 다당제이면 각 정당들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국민을 위한 정책경쟁 노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갈등과 반목, 배제를 멈추자. 우리는 포용이 필요하다. 정치는 선과 악이 아니다. 서로를 배제하는 정치는 건강한 민주주의도 아니다. 국민들은 배제하는 정치에 이제 질렸다. 타협하는 정치를 원한다. 이제 타협이 가능한 포용의 정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30년도 지난 1987년 체제를 아직까지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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