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 칼럼] 지역연고와 좋은 정치는 상관없어, 능력과 자질이 출마기준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제부로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모든 후보들은 저마다 신발이 닳도록 지역을 누비며 유권자들에게 읍소하는 고된 2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모든 후보들의 무운을 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논란이 많고 치열한 곳을 뽑으라면 아마 민주당 김동연 후보와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경쟁하는 경기도지사 선거, 민주당 송영길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경쟁하는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바로 직전 0.7% 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후보가 출마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일 것이다. 특히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는 논란과 설전을 넘어 온갖 음해와 욕설까지 난무하고 있어 네거티브 선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는 “시X”이라는 욕설문구가 인쇄된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다. 아마 역대 선거 중에 가장 볼썽사나운 선거가 아닐까 싶다. 

민주당에서는 지난 3.9대선 패배 후 지방선거 위기론이 커졌다. 서울시장 탈환을 위해 송영길 전 대표 등판론이 급부상했고, 송영길 후보는 당내 경선을 거쳐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동시에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방선거 위기론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내 요구가 커졌고, 이재명 상임고문은 송영길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로 보궐선거 대상 지역으로 된 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 윤석열 검찰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입법부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곧 바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남용하기 위한 노림수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가 인천 계양을 지역과는 특별한 연고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무연고(無緣故) 출마’를 연일 문제 삼았다. 경기 성남시분당구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는 “정치인은 무연고 지역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면서까지 이재명 후보의 계양을 출마를 비판했다. 매일 쏟아지는 다양한 비판과 논쟁 중에서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에서 주장하는 ‘무연고 출마’ 논란은 꽤 골이 깊은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여서 그냥 넘길 수가 없는 주제다. 무연고 출마 비판은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 vs. 김은혜: 연고(緣故)에 대한 같은 당, but 다른 기준

안철수 후보는 18일 공식선거운동 각오를 밝히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치인에게 있어 연고는 정말로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연고 없는 곳에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성남시 분당 판교에 거점을 둔 자신의 회사 ‘안랩(AhnLab)'을 연고로 성남시 분당갑에 출마한 자신의 명분을 부각했다. 사실 이재명 후보와의 차별화를 두기위한 메시지였다. 그러면서 “연고가 있는 곳에 관심이 있는 게 당연하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안철수 후보도 분당으로 이사한지 며칠밖에 안 되는 이주민이다. 안 후보의 직전 연고는 자신이 19대 총선에 출마해 재선까지 한 서울 노원이었다. 

반면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는 지난 4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자당의 경선 상대인 유승민 후보를 견제하며 “경기도 연고를 따지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며 “역량과 능력이 있다면 누구든 선의의 경쟁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승민 후보는 연고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오죽 공격할 게 없으면 그러냐”면서 대한민국 축구 월드컵 4강을 만든 외국인 출신 히딩크 감독을 예로 들며 연고를 따지는 것을 유치한 장난이라며 무연고 논란을 일축했다. 

검찰은 '판도라의 상자'로 지목된 한동훈 검사장의 아이폰을 입수하고도 22개월동안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결국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탐사전문매체 '열린공감TV'에서는 문제의 아이폰 잠금을 풀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냈다고 밝혀 화제다. 한동훈 검사장은 윤석열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인의 출마지 '연고'를 따지는 것 보다 검찰 등 특정세력의 연줄주의가 더 위험한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안철수 후보, 김은혜 후보, 유승민 후보 모두 같은 당인 국민의힘이다. 하지만 모두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가 연고가 없다는 비판은 그래서 유치할 수밖에 없다. 저마다 지역에 없는 연고도 만들어서 명분을 내세웠던 사람들이 정치인, 바로 자신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연고를 따지는 정치는 속히 사라져야 하는 구태 정치임에 분명하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또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급조한 주장이지만, 그럼에도 김은혜‧유승민 후보의 발언은 꽤 정확한 인식이라고 평가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랬던 사람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정당은 정작 상대 후보를 ‘무연고’라며 비판을 하니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종로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된 최재형 후보는 종로에 아무 연고가 없었음에도 국민의힘에서 전략공천했다. 그런데 무연고 비판이라니. 이런 정치는 구태라는 표현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다. 사실 당을 떠나 누구든 서로 앞 다퉈 연고를 따지는 것은 모두 구태정치다. 

주먹구구식 자기사람 채우기도 연고주의 때문

연고주의(緣故主義), 무엇이 문제인가. 연고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혈연‧지연‧학연이라는 대부분 자연 발생적으로 주어진 인간관계를 우선시하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사회현상이다. 연고주의를 이해할 때 ‘연결주의’와 ‘연줄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이 둘 모두 영어로는 네트워크(network)이지만, 후자는 지연‧혈연‧학연처럼 특수하고 폐쇄적인 관계인 반면, 전자는 보편주의적 성격에 의해 맺어지는 개방적 관계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고 있듯이 연결을 강조하는 보편주의적 성격의 연결주의 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연줄주의의 문제점이 연고주의가 발생시키는 가장 큰 문제라는 데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줄을 잘 서라”는 말도 이런 연줄주의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쓰는 연고주의를 연줄주의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런 연고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친인척비리, 부정청탁, 입시비리 등 부패와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핵심 문제를 하나 꼽으라면 연고주다. 연고주의가 만연하고 비판 없이 수용되면 구조적으로 부패가 발생하기 쉽다. 연고주의는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이득을 얻기 위해 특정 대상을 선호하거나 특혜를 주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연고주의로 인해 야기되는 대표적인 병폐는 지역갈등, 패거리정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저발전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줄주의는 약화되는 것이 맞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하여 다수의 검찰출신 인사로 구성된 윤석열 정부의 내각은 대표적인 검찰연줄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도 유독 검찰출신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직전 검찰총장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검찰출신 내각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부터 검찰공화국 우려가 컸던 이유도 바로 한국사회가 강력한 연줄주의가 작동하는 정치라는 것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치라는 고도의 종합예술 현장에서 연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정무직과 임명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선출직에서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후보들이 연고를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선거기술과 캠페인에 불과할 뿐 좋은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전에 몇 년간 다녔던 초등학교를 연고라며 찾아와서 깃발 꽂는 정치가 정말 지역에 좋은 정치인지는 대시 생각해봐야지 않을까. 지역사회에 필요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정치력의 문제이지 적어도 연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지역에서 풀뿌리 정치로 성장하는 정치인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도 온통 주먹구구식 자기사람 채워 넣기가 만연한 연고주의 기반의 정치 때문이다. 누구든 능력과 자질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출마할 수 있어야 한다. 

강남갑 태영호 전략공천 사례를 통해 연고주의를 다시 생각해보자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이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서는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 태영호(태구민)씨를 서울 강남갑 지역구에 전략공천 했다. 파격적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한국정당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 평가한다. 2020년 총선 당시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까지 가면서 분위기가 좋았으나 결국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한창 급랭했던 시기였다.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위장 평화쇼’라고 비판하며 다시 강경한 대북제재와 북한인권을 강조했다. 탈북민을 비례대표 후보가 아닌 서울에서 ‘노른자’라고 불리는 강남갑 지역에 전략공천 한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지역구 후보 뿐 아니라 비례후보로 탈북민 지성호 북한인권운동가를 당선권에 배치했다. 결국 21대 총선 결과 국민의힘에서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이 두 명이나 나오는 쾌거를 거뒀다. 19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탈북민 출신 조명철 후보가 비례로 당선 된 것까지 합하면 총 3명이 나온 것이다. 여전히 이데올로기 대결이 멈추지 않은 남북관계와 여야 진영대결 정치현장에서는 의미가 있는 사건들이다.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를 바라보는 일부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평가였다.

“‘남한 뿌리론’은 탈북민 가슴에 대못박아”

당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래통합당의 태영호 후보 강남갑 지역구 공천에 대해 "국가적 망신이다. 공천을 이벤트화한 것"이라며 "그 사람이 강남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대표의 비판은 부분 일리가 있다. 태영호‧지성호 후보 공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래통합당에서 탈북민 공천을 ‘선거용 카드’로 사용한 측면이 크다. 공천을 이벤트화 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설사 그것이 이벤트 목적으로 이슈를 끌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탈북민을 공천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정치사의 큰 진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을 보수당이 두 번이나 한 것이고, 보수당이 세 명이나 그것도 지역구 공천까지 당선시킨 것을 민주당은 여태 한 명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굉장히 큰 차이다. 

탈북민 공천에 대한 평가는 우선 차치하고, 나는 김종인 대표의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연고주의(緣故主義) 지적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태영호 공사의 강남갑 전략공천에 대해서는 당시 여야를 떠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미디’라고 힐난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연고(無緣故) 출마’를 공개적으로 또 사석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나의 주변에서도 종종 들렸다. 나는 그런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 탈북민 사회에 대한 대표성 비판,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여서 비판하는 것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무연고 공천’을 이유로 비판 또는 냉소하는 모습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사실 이는 보수당 후보로 출마한 탈북민에 대한 조소(嘲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태 탈북민을 한 번도 공천하지 않은 민주당에 대한 냉소 보내는 것이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유엔 전 대사였던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은 이러한 사람들의 냉소에 대해 “탈북민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라며 “남한에 연고지가 없는 탈북민들은 어떤 지역 기반 선거에도 입후보할 수 없는 것인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오준 전 대사는 “탈북민은 ‘아무나(nobodies)'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유엔 연설을 남기기도 했다. 

조경일 작가. 『아오지까지』저자

당시 태영호 후보는 김종인 전 대표에 대해 “‘남한 뿌리론’은 탈북민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라며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태영호 후보의 주장처럼 ‘남한 뿌리론’은 탈북민들에게는 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종인 대표가 지적한 맥락을 좁게 해석하면 탈북민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무연고 공천’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수용하기엔 지나친 비판이다. 탈북민들은 남한사회에 연고지가 없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촘촘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작동하는 학연‧지연‧혈연의 삼중수혜(三重受惠)에서 탈북민들은 제외된다. 연고주의가 강력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탈북민들이 주류사회(主流社會)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당이든 상관없이 선거공학에 따라 시혜를 베풀든 이벤트화 하든 탈북민에 대한 공천은 그런 정치행위 자체만으로도 탈북민들이 정치적 주체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엄청난 기회이다. 적어도 탈북민들에게 잘 해볼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다. 현재 대다수의 탈북민들이 보수적 정치색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임을 무시할 수 없다. 5천만 인구 중 겨우 0.0007%에 불과한 3만4천여 명의 소수자 입장에서 대표성을 준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동료들의 고백에 나는 공감해줄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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