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 년 전 외세와 탐관오리가 판을 치는 혼돈의 시기에 보국안민(輔國安民)·제폭구민(除暴救民)을 기치로 분연히 일어선 이가 있으니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다.

전봉준을 필두로 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최초 싸움이었던 '황토현 전투'는 한국 농민 혁명사에서 피의 역사로 기록됐다.

오늘날 황토현 전투는 혈전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전북 정읍시가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하며 역사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25일 정읍시에 따르면 시는 오늘날 '민주화 운동의 뿌리'라고 평가받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우선 시는 2020년부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매월 10만 원씩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당시 동학농민혁명은 '동비의 난'으로 평가 절하됐고 탄압을 받아 후손들은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이런 후손들을 예우하고 명예를 회복하고자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유족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1894년 4월 황토현(정읍시 덕천면)에서 전라감영군과 보부상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을 황토현으로 유인해 치열한 전투 끝에 대승을 거뒀다.

이를 기억하고자 1987년 10월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적지에 건립된 전봉준 장군 동상은 친일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제작했다.

하지만 김경승이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인 까닭에 동학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철거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불멸, 바람길'
'불멸, 바람길'

특히 몸체는 격문을 든 농민군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머리는 죄수처럼 맨상투로 돼 있어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시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한 정읍시는 동상 철거를 결정했고 철거된 동상은 정읍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자리에는 동학농민군 행렬을 형상화한 가천대 임영선 교수의 작품 '불멸, 바람길'이 설치됐다.

'불멸, 바람길'은 고부에서 봉기를 시작한 동학농민혁명군의 행렬 이미지를 부조, 투조, 환조의 기법으로 제작한 군상 조각이다.

동학의 인본주의 사상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도록 인물 배치를 사람인(人) 형상으로 한 게 특징이다.

작품은 특정 인물이 강조돼 높은 좌대 위에 설치되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형식을 지양했다. 또 행렬의 선두에 선 전봉준의 크기와 위치를 민초들과 수평 배치했다.

벗은 갓을 들고 가는 전봉준의 모습은 신분제 차별을 없애고 불합리한 모순을 개혁하려는 혁명가의 의지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상 제작에는 국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635개 단체 5천149명이 2억2천570만 원을 모았다.

벽화에 꽃피운 정읍시 역사
벽화에 꽃피운 정읍시 역사

올해 5월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개원해 의미를 더했다.

기념공원은 황토현 전적지에 2014년부터 324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어졌다. 30만1천329㎡ 규모에 전시실과 추모관, 연구동, 연수동 등이 마련됐다.

공원 중앙에는 전국 아흔 개 지역에서 탐관오리와 외세 침략에 저항해 분연히 일어난 혁명군을 상징하는 아흔 개의 '울림의 기둥'이 세워졌다.

정읍시는 기념공원이 혁명 정신을 확산하고 순국선열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녹두장군 전봉준 고택
녹두장군 전봉준 고택

또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올해 8월부터 연말까지 기념공원 등지에서 '찾아가는 정읍 집강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는 이밖에 문화재 보수 정비, 동학농민혁명 국제콘퍼런스 세계혁명 도시 연대회의 개최, 동학농민혁명 UCC 공모전 등을 준비 중이다.

이학수 정읍시장은 "동학농민혁명의 만민평등 정신과 자주독립 의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룬 초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꾸준히 혁명정신 선양사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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