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10년 ...엔지니어 사업가에서 전업작가 변신
우주적 생명성 화폭에 형상화...'밥평등' 지고한 이상
27일까지 떼아트갤러리 초대전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캔버스에 쌀알들이 총총히 박혀있다. 색점을 연상시키다, 캔버스에 색을 뿌려 놓은 듯 하다. 바탕색과 어우러져 묘한 빛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캔버스라는 밭에 색의 씨를 뿌려 빛을 추수하는 모양새다. 27일까지 종로구 평동 떼아트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문수만 작가의 작품 이야기다.

세밀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공학도 출신의 문수만 작가
세밀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공학도 출신의 문수만 작가

그는 캔버스를 밭가꾸듯이 일군다. 땅힘을 돋구는 마냥 튼실히 바탕색 작업을 한다. 그 위에 쌀알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고 캔버스 전면에 다시 색을 칠한다. 그리고 스티커를 제거하면 바탕색의 쌀알이 드러난다. 후반 작업으로 쌀알과 바탕색이 어우러지도록 세필작업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 같은 작업은 세밀하고 정밀성을 요구한다. 공학도 엔지니어 출신다운 모습이다. 500여 가지 형태의 쌀알 스티커도 컴퓨터디자인을 통해 시트지로 직접 만들어 냈다.

“10년간의 암투병이 저의 삶의 가치를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생명의 무게,그리고 저라는 생명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미술을 다시 공부했다. 가업을 이어받은 유망한 엔지니어 사업가의 길을 뒤로 한 것이다. 이제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생명의 무게를 형상화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 온 것이 쌀 한 톨의 무게였지요”

그의 화폭은 우주공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일몰과 일출 풍경을 떠 올리게도 해준다. 무어라 할 수 없는 생명의 아우성, 생명의 빛이라 하겠다.

그가 홍순관의 노래 ‘쌀 한톨의 무게’를 흥얼거린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무게를 잰다/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요즘들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쌀 한톨도 우주의 큰 바탕이 없으면 생길 수가 없기에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에 ‘하늘’이 숨쉬고 있어 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신냉전 기류도 우주속에 모두가 쌀 한톨의 무게로 연결돼 있음을 통찰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작품에 담겼다고 했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빼앗고 뺏기는 게 아니라, 더 강해지기 위해 죽이고 죽는 게 아니라, 이제는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살자는 것이지요. 무위당이 말한 ‘속도-성장-경쟁의 구도가 아닌 관계를 중시하는 삶’이지요”

그의 화폭에서 쌀 알들이 제각각 나름의 아우라를 내뿜으며 우주를 그려내는 것은 이 같은 정신의 형상화라 하겠다. 바닷가에서의 일몰, 일출 풍경을 연상시키는 블루톤의 작품마저도 무한 공간인 우주로 열려져 있다.

‘쌀’을 소재로 한 것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추상적 화면과 결합된 쌀이라는 독특한 소재는 예술작품의 목적 중의 하나인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관념만큼이나 물질의 역할을 전제한다. 점이 기하학적이고 관념적 요소라면, 쌀은 유기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다. 세상만사를 다 먹는 문제로 돌리는 것은 큰 오류이지만, 모든 것을 마음의 문제로만 돌리는 그 반대의 경향도 오류다. 특히 가난을 한번이라도 겪어 봤던 사람은 물질의 중요성을 안다. 밥의 문제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기에 숨겨져 있는 억압된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위기 국면에서 억압된 것은 회귀한다. 현대사회의 역동성에는 위기가 늘 잠재해 있다. 쌀 또한 정신이고 문화이고 예술일 수 있다. 고상함을 추구하는 예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물질주의에 대항하면서 유심론의 오류에 빠지곤 한다. 문화예술의 활성화와 기본 영양의 문제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 이른다. 특별한 중심이 없이 일정 간격으로 배열된 쌀알은 집중이 아닌 평등을 말한다. 밥의 평등은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 중 가장 지고한 이상이라고 생각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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