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 쯤 ‘인생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모든 철학자의 질문이요, 모든 인간이 갖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명쾌하게 답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명쾌하게 답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 덕화만발 카페에 <박정진의 시와 철학 방>이 있습니다. 박정진 님은 저명한 시인이자 철학자이십니다. 우리 박정신 시인은 ‘철학 시’로 우리 ‘덕화만발’을 한 차원 높여주시는 분이시지요. 그분의 시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을 소개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詩/ 박정진-

1.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그것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 아는 것은 오직 삶 뿐이기 때문/ 영생을 꿈꾸는 까닭도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 죽음과 영생의 하나의 뿌리,/ 생각 생사는 둘이 아니네.

둘이 아닌 존재를/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인간/ 나누는 것이 생각의 특성이라네./ 사이-존재인 인간의 특성이라네./ 세계가 이미 인간이라네./ 나누고 선 합치느라 평생을 소모하네.

2. 자연이 인간의 탄생을 허락함은/ 스스로를 알기 위한 자연스러움의 발현/ 나도 그 자연스러움을 닮고 싶네./ 인간이 하나님을 닮든/ 하나님이 인간을 닮든/ 부모·자식 간에 닮은 것과 같네.

신에게 빌어서 구원과 영생을 얻든/ 스스로 깨달아서 부처와 열반을 얻든/ 죽음을 넘고자 하는 인간들/ 죽음을 준비하는 인간들/ 앎이 삶을, 삶이 앎을 속고 속이는 일들/ 생멸(生滅)은 있어도 생사(生死)는 없다.

3. 제자리에서 무엇이 되든/ 한 마리의 나비가 되든/ 하나의 민들레 홀 씨가 되든/ 천수를 누리든, 소년 죽음을 하든/ 자연에서 바라보면/ 죽음도 아닌 죽음/ 살아도 삶이 아닌 삶을 살면서/ 불안에 시달린 세월/ 죽음에 시달린 세월, 그 얼마더든가./ 순간을 살아도, 하루를 살아도/ 부처님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대자대비, 사랑하다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4. 제자리에서/ 바로 이웃에서/ 손짓하면 보이는 데서/ 노래하면 들리는 데서/ 밥 먹으면 숟가락 질 들리는 데서/ 우리의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그것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 세계가 넓은 까닭은/ 그것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 자연은 지금, 여기, 그냥 있음이네./ 있음을 ‘있는 것’이라고 하니 괜히 불안해지네.

어떻습니까? 조금 난해한 시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명확하게 밝힌 철학 시가 아닐까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큰 돌 비석이 하나 있고, 그 비문에는 ‘아프레 쓸라(Apres cela)’ 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적혀 있다고 합니다.

‘아프레 쓸라’라는 말은 ‘그다음은, 그다음은, 그다음은’이라는 뜻입니다. 고학을 하던 한 법대 생이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 놓고 학비를 도저히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신부는 “마침 조금 전에 어떤 성도가 좋은 일에 써 달라고 돈을 한 묶음 갖다 놓고 갔네. 이건 분명히 자네를 위한 것일세.” 하고는 돈을 세어 보지도 않고 이 학생에게 내어주었습니다. 뜻밖의 도움을 받은 이 학생은 기쁜 얼굴로 봉투를 받아 돌아 나오는데, 신부가 잠시 불러 세웁니다.

“한 가지 묻겠는데, 자네는 그 돈을 가지고 가서 뭘 하려 나?” “말씀을 드린 대로 등록금을 내야지요.” “그다음은?”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해야지요.” “그다음은?” “법관이 돼서 억울한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좋은 생각이구먼, 그래 주면 좋겠네. 그럼 그다음은?” “돈 벌어서 장가도 가고, 가족들도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다음은?” 심상치 않은 질문에 학생은 더 이상 대답을 못했습니다. 신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다음은 내가 말하지. 자네도 죽어야 하네. 그다음은 자네도 심판 대 앞에 설 것일세. 알았는가?” 학생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Apres cela’라는 신부의 질문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학생은 결국 돈을 신부에게 돌려주고,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었고, 보람 되고 귀한 일들을 많이 하며 생을 보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그의 묘비에는 그가 한평생 좌우명으로 외우던 세 마디, ‘Apres cela, Apres cela, Apres cela'를 써 놓았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계획을 세워 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의 삶이 전부인 양 현실에만 급급하여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기를,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어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를,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얻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그다음은, 그다음은‘ 어찌하려는 지요?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내 삶이 언젠 가는 끝나는 날은 반드시 온다!’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삶이 무기력하게 되는 이유는, 종말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아프레 쓸라’ 우리도 늘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9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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