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비난말고 더 좋은 대안 내놓아야

우발적 대치 방지를 위해서라도 남북 9.19 군사합의는 이행하자 

9.19 남북군사합의 4주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4개월 만에 정치메시지로 내놓은 일성은 다름 아닌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이었다. 그러자 여당은 일제히 비난 메시지를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 등 일련의 성과들을 ‘위장 평화쇼’라며 깎아내렸다.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현 정부에 부담을 주는 ‘부적절한 정치개입’이라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쁘기만 하다. 여당은 자신들의 약점을 비난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의 남북대화들을 ‘위장쇼’라며 비난하기 이전에 보수정부에서 더 나은 대북정책을 내놓고 담대하게 추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 이후 보수정부에서는 대북정책에 있어 의미있는 성과들이 없었다. 남북정상 간에 대화는 물론 교류조차 없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집권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금강산 관광이 단절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공식적인 교류가 모두 단절됐다. 원인이 북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2017년 말 전쟁위기를 극적으로 넘기면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까지 확대가 됐다. 적어도 최근 20년 동안 보수정부에서는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한 기여가 없었다고 봐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흔적 지우기에 급급하지 말고, 더 나은 정책을 내놓으면 된다. 내용 없는 담대한 구상 같은 것 말고 말이다. 

▲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문 서명 이후 서로 악수하고 있다. /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왼쪽)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합의문 서명 이후 서로 악수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5년간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없었다. 남북관계에 있어 문재인 정부의 최대의 공(功)이다. 물론 군비증강으로 결국은 남북군비경쟁이 심화되어 대결정책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상유지를 전제로 실존하는 군사적 위협을 해소했다는 측면에는 분명한 공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 5년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무력 충돌은 없었지만, 한반도 평화는 멀어졌다”는 말로 총평했다. 남북이 군사도발을 비롯한 현실적 위기 해소에 합의하여 실제적 성과는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대결정책 변화에서 진전은 없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근본적 진전이 어려웠던 이유는 물론 북미정상회담의 실패에 있다. 키(key)는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로서는 ‘군사적 대치’라는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고, 현 상태를 동결하는 것만으로도 성과임에 분명하다.

접경지역에서의 비무장화와 군사적 완충 지역 설정을 골자로 하는 남북 9.19 군사합의가 우발적 충돌 방지에 큰 기여를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비무장지대 휴전선에서 남북 간 갈등과 대치가 각각 150여 차례 있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열 차례가 안 된다. 9.19 군사합의의 가장 큰 효과 중 하나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중에 반드시 계승해야 할 정책이 하나 있다면 바로 9.19 군사합의일 것이다. 

역대 남북정상회담은 전부 민주당 정부에서 있었다. 분단역사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연 김대중 대통령의 6.15선언, 노무현 대통령의 10.4선언, 문재인 대통령의 판문점 4.27선언과 두 차례의 후속 만남, 모두 다섯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전부 민주당 정부에서 있었다. 국민의힘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유난히 ‘평화쇼’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바로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에 있어서 자신들의 기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보수정부가 내세울 만한 기여가 전혀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태영호 의원의 기대처럼 보수정부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면 '위장 평화쇼'같은 비난은 아마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경일 작가
조경일 작가

지난 해 3월 15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한미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군사분야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대규모의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했음에도 북한은 여전히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9.19군사합의를 “휴지조각”이라며 비난했다. 우리가 먼저 파기를 선언할 기세다. 이는 북한에게 도발하지 못하도록 묶어놨던 제약을 풀어주는 셈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윤석열 정부에게 남북 간에 대화나 진전까지는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 상태에서 더 악화되거나 위기만이라도 없기를 바랄뿐이다. 

태영호 의원의 기대처럼 보수정부에서도 남북정상 간 만남이 있는 담대한 대북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의 복사본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대북메시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남북은 서로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담대한 구상’은 여전히 담대하게‘구상 중’에 있는 것일까. 오히려 태영호 의원의 대북방송 선제적 개방과 북미수교 제안이 더 담대하다는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보수정부의 대북정책은 진전이 아닌 동결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정책과 메시지들이 전부 이전으로 돌려놓는 내용들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력을 법제화 했다. 이에 맞춰 여당에서는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목소리가 솔솔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 다시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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