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정상국가를 향한 연출로 바뀌고 있는 북한, 남한도 접근법이 달라져야

김주애. 김정은의 딸이 세상에 공개됐다. 북한이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그것도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에서 말이다. 딸의 손을 잡고 미사일을 뒤로한 채 발사장을 걷는 모습은 너무도 강렬하다. 경축일도 아닌 발사장에서라니. 이를 두고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고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김정은의 욕망 그 자체를 봤다. 그래서 근래 본 사진 중에 가장 강렬한 사진이다.

연합뉴스

사진 한 장에 모든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정상성’과 그것을 담보해주는 ‘힘’ 말이다. 아빠가 딸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은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지만, 그 뒤에 거대한 미사일은 모든 정상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를 정상국가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너희도 정상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저 한 장의 사진에 김정은의 정상국가를 향한 욕망이 담겨져 있다. 그 욕망은 오로지 정상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것이 북한이 가진 딜레마이자,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정상국가를 향한 김정은의 메시지는 선대로부터 이어졌다.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인 김정일, 그리고 그 대업을 이어받은 김정은 그 자신. 그들은 여전히 정상국가로의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연출된 사진이다. 연출된 사진은 의도를 담고 있다. 왜 하필 딸인가. 사진의 정치학이다. 김정은이 가장 노골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다. 북한정권은 지금껏 그래왔다. 정권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힘뿐이라고. 그냥 힘이 아니다. 미국이 두려워할 수 있는 힘, 바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동시에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부인(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핸디캡이 있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김정은은 퍼스트레이디 정치를 공식화 했다. 집권 후 부인 이설주와 공식석상에서 여느 국가들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개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들은 영부인이 공식석상에 잘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정상국가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 왔다. 이번에는 자녀다. 딸 김주애, 그것도 발사장에 등장시켰다. 정상국가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등 뒤에 발사대에 서있는 저 미사일은 사랑하는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김정은이 던지는 말이다. 물론 우리 눈에는 그저 독재자일 뿐이다. 

정상국가, 서방세계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과 달리 북한을 정상국가로 생각해왔지만 말이다. 한국은 여전히 북한을 정상국가가 아닌 특수한 관계, 더 노골적으로는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한반도 부속도서’라는 헌법 조항 때문이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특수한 관계’로서 남북관계로 규정되고,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반국가 단체’로서의 북한으로 성격이 바뀐다.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북한의 인정투쟁. 그 수단이 핵무기였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다. ICBM이 미국 본토에 다다를 만큼 성공했지만 여전히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미지 정치가 더해졌다. 독재자가 아니라 여사가 있는, 딸이 있는 평범한 가정의 아빠로서의 이미지가 추가됐다.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는 조선중앙방송의 메시지는 김정은에 대한 독재자의 이미지를 희석시킨다. 

조경일 작가
조경일 작가

김정은은 딸에게 무슨 말을 속삭였을까. 오직 힘만이 우리 가족을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을 했을까. 저토록 웅장하게 화염을 뿜어내는 미사일이 조국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김정은의 속삼임이 사진에 담겨 있다. 오직 힘만이 우리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그런 속삭임 말이다. 누군가를 파괴할 수 있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 그런 힘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고 그들은 역사를 통해 경험적으로 터득했다. 그래서 김정은에게 핵포기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북한을 바꾸기 위한 기존의 담론들과 접근법들은 이미 유효성을 잃었다. 북한은 스스로 바뀌고 있다. 그것이 독재를 더 강화하는 것이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든 말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그동안의 우리의 노력은 사실 실패했다. 이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지 그 또한 온전히 다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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