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를 보내며.. 지난 주말 필자의 강동구 성내동 근처에 위치한 <탄다타>란 식당에서 안상우 대표의 주선으로 송년회를 보냈다. 안상우 대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88 프로모션 심영자 회장의 희수 잔치를 비롯 여러 차례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과 배품 을 몸소 실천한 사업가이다.

이 자리에는 장정구 이형철 전직 세계챔프를 비롯 아마 츄어 국가대표 출신의 주항선 신창석. 그리고 한국권투 위원회(KBC) <검사부장>을지낸 최용만 성남 월 호텔 회장. 세계챔피언 김태식을 KO 시킨 괴물 복서 고기봉 소장등 지인들과 함께 만찬을 하면서 한해 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랬다.

JH건설회사 주항선회장 과 장정구챔프(우측) ⓒ 조영섭 기자
JH건설회사 주항선회장 과 장정구챔프(우측) ⓒ 조영섭 기자

만찬을 하기전 참석한 장 챔프를 보면서 장정구 챔프와 첫 인연이 생각난다. 1983년 12월 어느날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복싱 경기를 참관하러 당시 88체육관 창단 멤버인 김의진. 황동룡. 박광구. 최연갑. 박용운등과 어우러져 승합차로 이동하던 중 체육관 입구에 장 챔프가 시야에 들어온다. 

▶ 국내 최초로 WBA. WBC 양대기구 (플라이급) 세계정상에 등극한 김용강

그때 누군가가 야! 짱구다 라고 외친다. 88체육관 막내 이자 후에 국내 최초로 WBA. WBC 양대기구 (플라이급) 세계정상에 등극한 김용강 이었다. 순간 장 챔프가 승합차 문을 열고 대뜸 어느 누가 짱구라 했노! 라면서 도끼눈을 부릅뜬다. 장 챔프의 카리스마 넘치는 위협적인 한마디에 우리 일행은 시골장에 팔려온 촌닭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침묵을 지켰다. 한마디 했다간 얻어터질 살벌한 분위기였다. 잠시 후 장 챔프가 문을 닫으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때서야 우리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장정구는 전투적으로 삶을 살았던 복서다. 왜냐면 그가 태어난 곳이 영어로 군대를 상징하는 아미(Army)동 이었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나 그 이야기를 꺼내면 장 챔프는 쑥스럽게 웃는다. 후에 김용강은 은퇴한 장 챔프의 지도를 받으며 한뼘 한뼘 성장하며 세계정상에 올랐다. 사실 장 챔프는 알.부.남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다. 

김장성 심판위원 . 이형철 챔프. 국가대표 신창석 (좌측부터). ⓒ 조영섭 전문기자
김장성 심판위원 . 이형철 챔프. 국가대표 신창석 (좌측부터). ⓒ 조영섭 전문기자

오늘 모임에는 1981년 5월 제1회 마르코스배 대회에서 사상 2번째로 쿠바 복서<에차바리아> 를 꺽은 복서이자 국내 최초로 5체급을 석권한 신창석(경희대)이 참석했다. 또한 송파 경찰서 강력계 형사이자 KBC 심판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김장성(부천대) 선배와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이형철 챔프가 동반 참석 필자는 도파민(Dopamine)이 솟구쳤다.

두 사람은 모두 원진 체육관 출신이다. 1969년 12월 13일 전북 김제 군 죽산면 출신의 이형철은 입지전적(立志傳的)인 복서다. 1987년 10월 프로에 대뷔 최현엽에 4회 판정패를 당한 그는 11월에 문희찬 에 힘겹게 4회 판정승을 거둔다. 특별한 스킬 이 없어 장래성이 보이지 않던 이형철은 88년 3월 김창옥에 판정패를 그리고 88년 1월 88체육관의 고준범 의 회심의 라이트 일격에 2회 2분 56초 만에 KO패를 당하면서 1승 3패를 기록 삼류복서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형철은 이때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이 격렬하게 솟구쳐 오르면서 노력은 재능을 이긴다는 신념으로 재기의 가속 패달을 밟는다. 1989년 3월 정수용을 3회 KO 시키면서 연승 행진을 시작한 그는 1994년 9월 24전 전승(17KO)을 기록한 WBA JR 밴텀급 챔피언 오니즈카 를 9회 KO로 꺽고 정상에 등극한다. KO패 당한 오니즈카는 이형철의 맹공에 안면과 갈비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었다.

1995년 2월 1차 방어전에서 다무라 에 12회 KO승을 거두며 1차 방어에 성공할 때까지 이형철은 6년 동안 19전 18승 (15KO) 1패를 기록했다. 당시 유일한 1패인 1990년 8월 데이비드 그라만과 원정 경기도 홈 텃세에 의한 판정패였다. 이형철은 은퇴 후 김병태 한올 바이오 파마 회장과 인연으로 제약회사에 근무하면서 10년 만에 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 인생 3막을 화려하게 펼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이형철 챔프의 복싱 스토리는 추후 세세하게 이 코너 를 통해 실을 예정이다. 

이형철 장정구챔프. 사업가 주항선 최용만(좌측부터)ⓒ 조영섭 전문기자
이형철 장정구챔프. 사업가 주항선 최용만(좌측부터)ⓒ 조영섭 전문기자

1992년 구천서 KBC 회장과 염동균 챔프가 사무총장에 근무하며 투톱을 형성 프로권투를 운영할 당시 2년 동안 KBC(한국 권투위원회) 검사부장 지낸 최용만 씨도 필자의 러브 콜에 우싸인 볼트처럼 잽싸게 참석 해후를 했다. 1967년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95년 복싱계를 떠난 그는 2011년 경기도 성남시 모란역 에 위치한 <월 호텔>을 90억에 인수 운영하고 있다. 최용만 회장은 1년에 절반은 사업 관계로 해외에서 거주할 정도로 분주하게 지내고 있는데 복싱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한다. 절제된 진중한 행동으로 많은 복싱인에게 귀감이 된 최용만 회장은 독사 복서 박석규 선배와 가장 친밀하게 지내는 복싱인이다. 

진행범 . 장정구 김의진 챔프 (우측))ⓒ 조영섭 전문기자
진행범 . 장정구 김의진 챔프 (우측) ⓒ 조영섭 전문기자

오늘 참석한 분들중 복싱판에는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는 전직 국가대표 출신에 현 목포복싱협회 주항선 회장이 참석 자리를 빛내주었다. 목포복싱은 정봉현 선생이 해방 후 목포에 권투 구락부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18세 소년 강세철과 3년 후배 권노갑 (새천년 민주당 고문)이 입관 이곳에서 복싱을 수련했다. 강세철 은 1960년 11월 한국인 최초의 동양 챔피언에 등극했고 권노갑은 중학교 3학년부터 동국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복서 생활을 하면서 전남 도 대표로 수차례 출전을 했다.

이후 장기간 맥(脈)이 끊긴 목포복싱을 계승(繼承)한 인물이 바로 주항선이다. 주항선(1958년생)은 목포 덕인고 3학년에 재학중, 1977년 제58회 전국체전에 LW급으로 출전 목포 출신으로 전국체전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 기염을 토했다. 당시 동료 복서 황충재는 W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탄다타 안상우 대표 장정구챔프 김일홍 재향 군인회 회장(우측)ⓒ 조영섭 전문기자
탄다타 안상우 대표 장정구챔프 김일홍 도래샘그룹 부회장(우측)ⓒ 조영섭 전문기자

이듬해 조선대학에 입학한 주항선은 조선대 3학년인 1980년 8월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제10회 대통령배 대회에 전남 대표로 출전한다. 마침 이날은 LM 급에서 국제대회 4관왕을 달성한 박일천의 성대한 은퇴식이 열렸다. 박일천은 LM급의 천하무적 복서였다. 나경민 김현호 한혁수 이일수 이홍근 임창일등 역 대급 복서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104연승을 기록했다. 박일천의 104연승은 유종만의 49연승을 기록을 갑절 이상 뛰어넘는 불멸의 대기록이다.

이 대회 결승에서 전남 대표 주항선은 결승에서 전북 대표 김현호를 판정으로 잡고 박일천의 후계자로 발탁되었다. 1959년 군산 태생의 김현호는 전국체전 3회 우승을 비롯 김명복배 5연패를 달성한 왼손잡이로 1982년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였다. 난적 김현호를 잡고 국내 무대를 평정한 주항선(조선대)은 1981년 3월 제7회 킹스컵 선발전 결승에서 1980년과 81년 김명복배 2연패를 달성한 윤영복(경희대)을 꺽 고 LM 급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본선에 출전했다. 

해냈다! 1승3패의 역경을 딛고 세계정상에 오른 이형철챔프.)ⓒ 조영섭 전문기자
해냈다! 1승3패의 역경을 딛고 세계정상에 오른 이형철챔프. ⓒ 조영섭 전문기자

당시 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LF급 김종옥(성남체). F급 신창석(경희대). B급 김지원(수경사). FE급 김기택(안성고). L급 이현주(목포대). L.W급 김동길(전남체고). W급 양설석(경희대). L.M급 주항선(조선대). M급 이남의(한국체대). L.H급 김유현 (경희대). H급 김남희(전매청) 등이 주인공이다. 그해 5월 필리핀에서 벌어진 제1회 마르코스배 대회에서 주항선은 8강에서 덴마크의 구나르 버그에 5ㅡ0 판정으로 잡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복싱 불모지(不毛地) 목포에 주항선(朱恒宣)이 출연(出演) 국가대표로 발탁 가시밭길을 걷어내고 아우토반을 반듯하게 펼쳐놓자 바통을 이어받은 목포 출신 복서 장성호 이현주 문성길 전칠성 권현규 등 독수리 5형제가 전방위(前方位) 에서 맹활약 한국 아마복싱의 대동맥을 구축했다. 조선대학을 졸업한 주항선은 1983년 모교인 목표 덕인고에서 체육교사로 발령받아 7년 동안 근무하다 1990년 교직을 접고 강남에서 사업가로 변신 현재 JH 건설회사 대표직을 맡고 있다.

고기봉 문류센타 소장과 장정구챔프(우측) ⓒ 조영섭 전문기자
고기봉 문류센타 소장과 장정구챔프(우측) ⓒ 조영섭 전문기자

 현재 인천시에서 물류 센타 소장을 맡고 계시는 KO왕 김태식을 KO시킨 사나이로 유명한 고기봉 선배도 망중한을 이용 송년회에 참석해 주셨다. KPBF 심판위원장을 역임한 칠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4시에 기상 체력운동을 끊임없이 해 우월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그는 같은 체육관 소속의 이형철 챔프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표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국복싱의 안젤로 던디라 불리던 김준호 선생과 필자는 생전에 오찬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홍수환 염동균 박찬희 김태식등을 조련한 전문트레이너였다. 이분에게 지금까지 지도한 복서 중 가장 뛰어난 복서가 누구냐? 란 필자의 질문에 그분은 잠재력을 펴지 못해 세계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허준 김학영 고기봉등 3명의 복서를 차례로 꼽았다. 168Cm 장신에서 스커드 미사일처럼 위력적인 펀치력을 보유했던 숨은 실력자 고기봉의 건승을 바란다. 

어느덧 소리소문없이 스포츠 컬럼을 연재 한지 어느덧 8년여 세월이 흘렀다. 역사의 기록은 정확하고 신중해야 한다. 고증과 검증 없이 사실(史實)에 기초하지 않고 각색하거나 윤색하고 왜곡해서 기록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품고 진중하게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깊은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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