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필자는 남양주시 평내 호평역으로 향했다.

목적은 이곳에 거주하시는 전 동국대학 복싱부 김진영 감독 선생을 만나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인근 구리시에 사시는 박형춘 선생도  합류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두 분은 80년대를 전후하여 학생연맹 전무(박형춘)와 사무국장. (김진영)직을 수행하면서 학생연맹 부회장인 노병엽 선생과 트로이카를 형성 학원 스포츠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한 분들이다.

1981년 서울신인대회 코크급 우승자 김광선(우측).
1981년 서울신인대회 코크급 우승자 김광선(우측).

김진영 선생은 1944년 전북 김제 출신이다. 전북 김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인탁(레슬링)과 정소영(배드민턴) 프로복싱 WBA JR 밴텀급 챔피언 이형철을 배출한 고장이다. 또 한 제 22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박승총재가 탄생한 고장이다. 서울대학 출신의 박승총재는 자신의 모교인 김제 백석초에 10억원의 장학금을 포함 도 합 30억 원 이상의 사재를 사회에 환원한 청렴한 공직자이다. 

각설하고 1961년 3월 한국체육관 노병렬 선생 휘하에서 복싱을 배운 김진영은 뛰어난 순발력과 민첩성을 발휘 1956년 멜버른 올림픽(밴텀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송순천의 스파링 파트너로 활약할 정도로 기량이 출 충 했다. 초대 챔피언 김기수를 비롯 이홍만 정청운 김재봉 이창길 동료 선후배들과 어우러져 훈련하던 김진영은 1966년 3월 제2회 서울 신인대회에 참가 한다.

전형적인 파워 풀한 파이터였던 김진영은 4연승 (3KO) 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 서울체육관 김상을 2회 2분 50초 만에 KO승을 거두고 플라이급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이어진 제19회 전국 신인대회 2회전에서 김창수에 2회 2분 17초 KO승을 거두고 8강에서 강학희를 RSC로 잡으며 순조롭게 결승에 진출했지만 송병섭(경희대)를 잡고 올라온 홍명호(한국체)에 분패 준우승을 차지했다.

1967년 제48회 전국체전에 서울 대표로 참가한 김진영은 이창길 이청하 이광우 등과 육군대표로 활약하며 1968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선발전과 세계 군인선수권(베트남) 대회에 육군대표로 참가했다. 

김재경의 세컨을 보는 김진영선생(우측)
김재경의 세컨을 보는 김진영선생(우측)

이후 선수 생활을 접은 김진영은 1976년 2월 동국대학 복싱부를 창단하는데 산파(産婆) 역활을 담당 복싱계에 지도자로 컴백 인생 2막을 펼친다. 창단 멤버는 밴텀급의 황철순(남산공전)과 플라이급의 김정철(동양공고) 두명 이었다. 김진영 선생은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이뤄져야 실제 경기에서 능력 발휘 할 수 있다는 철칙(鐵則)으로 이들을 담금질한다. 두 복서는 그해 개최된 몬트리올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박인규(금강유리)와 유옥균 (광주체)을   꺽 고 나란히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황철순은 올림픽 본선 8강전에서 찰스 무니(미국)에게 3ㅡ2로 패해 메달권에서 탈락했지만 16강전에서 1972년 뮌헨 올림픽 밴텀급 금메달 리스트인 마르티네스(쿠바)를 꺽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마르티네스는 1972년 뮌헨 올림픽(밴텀급) 결승에서 알폰소 자모라 (멕시코)를 판정으로 꺽 은 복서였다. 참고로 황철순이 올림픽대회에서 쿠바 선수를 올 꺽 은 건 사상 최초인 기념비적인 승리였다. 

김진영 선생 칠순때 함께한 가족사진(우측2번째)
김진영 선생 칠순때 함께한 가족사진(우측2번째)

황철순은 1977년 아시아선수권대회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1980년 2월에 개최된 제3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4월에 벌어진 킹스컵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 4관왕을 달성했다. 특히 킹스컵대회에서는 최우수복서에 선정되었다. 황철순과 동국대 입학 동기인 김정철도 1978년 제2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선발전에서 7연승(6KO)을 거두며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본선 준결승에서 케냐의 다푸니에 판정승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천금 같은 동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했다.

뒤를 이어 동국대학 복싱부를 빛낸 복서는 웰터급의 정용범이다. 서울체고를 졸업한 정용범은 동국대 2학년에 재학 중인 1982년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제9회 아시안게임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정용범의 바통을 받아 모교 동국대를 금강석(金剛石)처럼 가장 화려하게 빛낸 별이 출연한다. 바로 아마복싱계에서 더 이 상 수식어가 필요 없는 김광선이다.

군산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상경 1980년 한양공고에 입학 한국체육관에 입관한 김광선을 김진영 선생이 픽업(Pick up) 기초부터 탄탄하게 가르킨다. 그 당시 동국대학 복싱부 훈련장소가 한국체육관이었다. 김진영 선생은 김광선에게 보디웍 (Body. work)등을 전수한다. 그해 김광선은 서울 신인대회에 출전 코크 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졸업반인 1982년 10월 제5회 핀란드 국제대회에 참가한 김광선은 국제대회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최우수복서에 선정된다. 이후 김광선은 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할 때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토드로프(불가리아). 스크라빈. 에스피노자(소련). 레갈라도(쿠바). 주카나 홀라(핀란드). 아더 존슨(미국). 안드레아스 테브스(동독)등 세계적인 복서들을 차례로 제압한다.

그 결과 올림픽과 월드컵대회 포함 총 9회에 걸쳐 국제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인 율곡 선생이 생원시와 진사시 문과 복시와 전시에 모두 장원급제하는 등 총 아홉 번 장원급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렸는데 복서 김광선 역시 아홉 차례에 걸쳐 각종 타이틀을 획득한다. 그런 그도 명실공히 복싱 9단으로 불릴만한 복서라 할 수 있겠다. 

김진영 사단의 동국대학 복싱부는 이후에도 1989년 4월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대회에서 밴텀급에 출전한 조인주와 7월 제14회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는 유창현과 이훈 이 각각 금메달을 획득 동국대 복싱신화를 쉼 없이 창출했다.

특히 이훈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LM 급대표 출신의 이완균 (서울시청)과 각종 선발전에서 12차례 맞대결 전승을 거뒀다. 이는 특정 선수 최다 연승 국내 신기록이다. 1990년 제2회 서울컵 LW급 결승에서 난적 김시영(동아대)을 13ㅡ10 판정으로 잡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김재경도 동국대 출신의 보석 같은 존재다.

1991년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와 한미국가대항전에서 우승 3관왕에 올랐다. 김재경은 미국의 세계적인 복서 스티브 존스턴을 꺽어 파란을 일으킨 주역이다. 스티브 존스턴은 후에 WBC 라이트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명복서다. 김재경은 1992년 바로 셀로나 올림픽선발전에서 2차례 패했던 김민기 (한국체대) 와 박빙의 승부 끝에 판정승을 거두고 출전권을 획득했다. 

김진영 선생(좌측)과 박형춘선생
김진영 선생(좌측)과 박형춘선생

동국대학 복싱에서 89학번 권만득도 1991년 킹스컵대회에 출전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 모교의 명예를 빛낸 복서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웰터급) 준결승에서 김희준(서울시청)을 제압하고 최종 결승에서 전친철 (원광대)에 분 패 했지만 동국 대학 재학시절 이재현(대전대) 이철수. 윤용찬 (한국체대)등 정상급 복서들을 차례로 잡고 전국체전과 대통령배등 각종 대회를 휩슬었다.

이들 외에도 1982년 대학선수권 밴텀급 결승에서 고교시절 킹스컵 금메달 리스트인 권달원과 김성길을 판정으로 잡은 한국체대 김종원과 치열한 타격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대학선수권 최우수상을 받은 윤영환을 비롯 88년 제1회 서울컵에서 오광수를 꺽고 우승한 오영호(군산대)와 세계군인선수권 금메달 성광배(한국체대)를 각각 5ㅡ0 판정으로 제압한 1989년 킹스컵 은메달 박종심. 페더급의 맹주(盟主) 신창석을 KO시킨 83년 로마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강성덕(경남대과 맞대결 군말 없는 판정으로 꺽은 박진선.

김진영 선생의 첫 작품인 김정철과 황철순(우측).
김진영 선생의 첫 작품인 김정철과 황철순(우측).

1981년과 83년 대학선수권 대회(라이트 미들급) 결승에서 81년 킹스컵 국가대표 주항선(조선대)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선발전에서 이남의 (한국체대)와 나경민(해태)을 꺽고 국가대표로 발탁된 조용래(경남대)를 각각 제압한 김수영도 미다스손 (Midas touch)김진영 선생의 조련을 받으며 명 복서로 재탄생한 동국대 출신의 비밀병기(秘密兵器)들이었다. 

변장일 챔프 김진영선생 김광선챔프(우측).
변장일 챔프 김진영선생 김광선챔프(우측).

1987년 제10회 핀란드 국제복싱대회 밴텀급으로 출전 결승전에서 소련 선수에 분패 은메달을 획득한 변정일도 김진영 사단의 핵심 멤버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선발전에서 허영모(한국체대) 서정수 (홍익대)와 물고 물리는 대접전을 펼친 끝에 극적으로 승선했지만 흐리시토프 (불가리아)에게 16강전에서 판정패 고개를 숙였다.

절치부심한 변정일은 프로에 전향 1993년 3월 28일 WBC 밴텀급 타이틀에 도전 챔피언 멕시코의 빅토르 나바날레스를 홈링에 불러들인다. 이 대결에서 12회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정상에 올라 올림픽에서 아쉬운 패배를 달랬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9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김광선이 2차례 도전했지만 정복하지 못한 프로복싱 세계타이틀이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이 있다. 우주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하여 잠시도 한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되듯이 변정일과 김광선 두 복서의 대조적인 엇갈린 복싱운명을 보면서 떠올린 고사성어다. 

전국신인대회 준결승에서 이창식과 격돌하는 김진영(좌측).
전국신인대회 준결승에서 이창식과 격돌하는 김진영(좌측).

한편 1990년 제40회 전국대학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지도자상을 받은 김진영 선생은 동국대 복싱 감독을 거쳐 동국대 생명과학대학 교학과 과장을 역임하다 오래전 정년 퇴임했다.

현재 자택에 거주하면서 서예 붓으로 일필휘지(一筆揮之) 글을 쓰면서 여가생활을 즐기고 계신다. 김진영 선생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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