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흔히 들 인생을 야구에 비유합니다. 야구는 9회만 투 아웃부터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말인 즉, 야구는 끝날 때까지 승부를 모르고 마지막 한순간에 역전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뜻합니다.

가수 서유석 님의 노래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에 등산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수요일에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갓집/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세상 나이 구십 살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 하게 했는가?/ 세상은 삼십 년간 나를 속였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놀려대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나 볼 거야/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비 되고/ 할배 되는 아름다운 시절들/ 너무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나는 새 출발이다, 나는 새 출발이다』

어떻습니까? 참 명곡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대개 이 범주(範疇)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생각은 일념통천(一念通天)의 지혜의 샘물이 아닐까요? ‘늙은이(늘그니)’는 ‘늘 그 자리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생각이 깊고 많기 때문이지요.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염려하고, 가정을 지키면서,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고(思考)라는 말의 ‘고(考)’자는 ‘늙을 로(老)’ 변에 속하며 ‘생각한다.’라는 뜻이지요.

노인회(老人會)나 기로연(耆老宴)은 생각이 많은 분의 모임입니다. 흔히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고 항변하는데 이 말은 사실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몸은 늙어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큰소리로 항변합니다.

우리 죽는 날까지 젊은이의 기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리고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소망 하던 오늘이기 때문이지요.

나이가 들면 눈과 귀가 어두워집니다. 말도 어눌(語訥)해지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모든 기능이 저하되어 자세히 볼 수 없고, 또렷하게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없습니다. 쑥떡 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듣는 훈련을 평생 해온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끝은 죽음입니다. 봄꽃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입니다. 그런 단풍잎이 어느 이름 모를 바람에 느닷없이 똑 떨어지듯이 그렇게 죽는 것이, 오복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달린 매우 위태한 고비를 일러, ‘사생관두(死生關頭)’라 합니다.

사관(死關)은 죽음의 관문(關門)인 것입니다. 이렇게 낙엽 지듯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고종명이지요. 목숨이 끊어진다는 말은 ‘식도(食道)’인 목과 기도(氣道)인 ’숨‘이 끊어진다는 말입니다.

밥이 맛을 잃으면 30일 만에 죽게 되고, 공기가 맛을 잃으면 3분 만에 죽게 됩니다. 순간이 유명(幽冥)이지요. 나뭇잎 떨어지듯, 정전(停電)되듯, 눈 깜짝할 사이에 밝음과 어둠이 새벽 별 보듯 또렷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 나라 젊은이들이, 우리 늙은이의 사유(思惟)의 대자유(大自由), 자유(自遊)의 대 자유 속에서 늙어가는 즐거움을 알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이여! 그 젊음, 머지않아 끝이 나고, 그대들도 머리 희고, 지팡이 의지하며, 등 굽은 늙은이가 되고 맙니다. 우리 늙은이는 이미 모두 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를 외쳐 봅니다.

이제 우리들의 젊은이들이 더는 노인을 얕보거나 폄하(貶下)하지는 못하겠지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1월 20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