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의 메시지버스] 유승민 없는 윤석열 정권의 운명은

유승민은 찍어내고, 이준석은 몰아내고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 불출마 방침을 공식 선언했다. 작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시작된 윤석열 일행의 집요하고 조직적인 ‘유승민 찍어내기’ 작전이 드디어 목표한 성과를 거두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다.

유승민 찍어내기는 이준석 전 대표 몰아내기와 동전의 양면관계를 이룬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유승민 전 의원 경기도지사 출마 원천봉쇄는 이준석 전 대표 숙청을 위한 예열작업이자 사전포석이었다. 유승민이 민선 경기지사로 자리매김하면 이준석의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한 우군이자 엄호세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준석 숙청은 유승민의 당권 도전을 가로막는 최상의 전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친윤 인사가 당대표 경선전에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만 승부를 겨뤄 유승민에게 이기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다. 따라서 유승민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려면 경선과 관련된 규칙을 갖고서 시쳇말로 장난질을 칠 수밖에 없었고, 전당대회 룰을 윤석열 대통령 입맛에 맞게끔 뜯어고치자면 이준석을 국민의힘의 당대표직에서 어떻게든 쫓아내야만 했다.

윤석열 일행이 유승민과 이준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 피해자(Collateral Damage)가 적잖이 발생했다.

첫 번째 부수적 피해자는 60년 지기 윤석열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원조 윤핵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다. 여론의 온갖 눈총과 야유를 먹어가며 이준석 축출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권성동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그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자기가 집권여당의 새로운 당수로 선출될 걸로 오판했다. 문제는 권성동은 윤석열을 여전히 친구로 생각했지만, 윤석열은 권성동을 여러 심복들 중 하나일 뿐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이는 권성동이 권력의 냉혹한 생리를 잠깐 망각한 탓이었다.

두 번째 부수적 피해자는 나경원 전 의원이다. 윤 대통령과의 과거부터의 오랜 개인적 인연에 의지하다가 용산 대통령실로부터 날벼락을 맞았다는 측면에서 나경원이 빠진 착각은 권성동이 저지른 착오와 궤를 같이한다.

나경원은 ‘서울법대 고시반 오빠’ 윤석열의 선처와 호의를 은근히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 친절하고 후덕하던 고시반 오빠는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자 동시에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남편이기도 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난 20년 동안 정치권에서 갖은 풍상을 겪어온 천하의 나경원이 다른 여성의 배우자에게 친절과 배려를 바라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까먹었다는 게 필자로서는 슬프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세 번째 부수적 피해자는 당연히 수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신비주의의 탈을 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은밀하고 독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크게 분노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국정운영을 맡겼다. 그런데 문재인의 무책임함은 박근혜의 불투명함만큼이나 대중의 염증과 환멸을 불러왔다. 본인의 행동에 떴떳하게 책임을 질 것으로 믿어진 윤석열을 유권자들이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까닭이다.

유승민을 찍어내고 이준석을 몰아내며 윤석열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박근혜의 비밀스러움과 문재인의 의뭉스러움을 정확히 반반씩 섞어놓은 행태였다. 윤석열은 유승민 제거와 이준석 숙청에서 철저히 스스로를 감췄다. 그는 시종일관 윤핵관들 뒤편 숨어 모의를 주도하고 거사(?)를 지휘했다. 윤 대통령이 집권당에서 생겨난 모든 혼란의 원인이며 난맥상의 몸통임이 결국에는 백일하게 밝혀지자 그는 자신은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비겁하게 발뺌하며 책임을 얼렁뚱땅 모면하려 시도했다.

이준석 숙청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 어떠한 부정적 후과를 남길지는 이미 수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에 의해 숱하게 논의되어온 터이다. 필자는 유승민의 불출마 선언이 윤석열 정권에 가져올 세 가지 파괴적 영향에 주목하고 싶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사진=연합뉴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오직 민심만 바라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당대표 선거 이후 신당 창당의 길로 갈 것인가? (사진=연합뉴스)

첫째로, 윤석열 정권은 국민이 명령한 최우선 과제인 민생경제 회생과는 무관한 시대착오적 공안몰이에 더욱더 맹렬히 열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승민은 현재의 여당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의 경제전문가이다. 최고의 경제전문가를 거세한 빈자리는 경제에 관해 별다른 체계적 학습과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 윤석열 대통령 유형의 권위주의적 검사들이 채울 게 뻔하다. 그 검사들이 할 수 일이라고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수사하고, 조사하고, 기소해 재판에 보내는 것뿐이다. 수사와 조사와 기소와 재판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스탈린의 대숙청이 횡행한 소련은 망하기는커녕 지금쯤은 인민대중 전부가 억만장자인 지상낙원으로 의연히 건재하고 있었으리라.

둘째로 현 정권의 전반적 정책기조가 우리 사회의 혜택 받은 기득권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철두철미 충실하게 대변하는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을 걸로 예견된다.

유승민은 보수진영에 몸담은 현역 정치인으로는 아주 드물게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물질적 복리를 증진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는 여느 보수 정치인들과는 달리 증세를 감행해서라도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유승민의 이러한 소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낳는 도화선 구실을 했다. 유승민이 부당하게 배제됨으로써 윤석열 정권이 부유층과 특권층의 이해관계에만 복무해서는 안 된다고 여권 내부에서 죽비소리를 낼 수 있는 마지막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도 아울러 강제로 퇴장당했다.

셋째로 윤석열 정권의 ‘박근혜 정권 시즌2’성격이 한층 더 뚜렷해질 게 확실시된다.

유승민이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역설한 건 단지 친박세력의 부활과 재림을 저지하자는 취지만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교과서 파동이 웅변하듯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몸부림을 되풀이해 거듭하다 허망하게 자멸했다.

유승민 찍어내기의 성공적 완료를 계기로 윤석열 정권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을 완벽히 구축·확립했다고 평가될 수가 있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경북 지역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문한 행보는 박 정권과 윤 정권의 연속성을 확연하게 부각시키려는 용산 대통령실의 공공연한 의도 아래 기획·실행된 나름의 야심찬 정치적 이벤트였다.

윤석열 정권은 폭정의 전초기지

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이 당대표 경선에 나가지 않겠다며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한 글에서 유독 한 문장에 마음속으로 굵은 밑줄을 그었다. 순전히 그 의미심장함 때문이었다.

유승민은 “폭정을 막고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소명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공언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민주공화정을 심각하고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주체가 바로 윤석열 정권일 것임은 물론이다.

‘폭정’은 본디 야당이 여당을 규탄하며 사용하는 단어다. 당의 비주류가 당권파를 비판하면서 동원하는 어휘는 아니다. 비주류 유승민이 주류 윤석열을 겨냥했다면 필자가 위에서 인용한 문장은 “패권주의를 막고 당내민주주의를 지키는 소명을 다하겠습니다”로 수위가 조절돼야 마땅했다. 유승민이 윤석열과는 더 이상 정당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필자는 윤석열 정권을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로 사실상 규정한 유승민의 판단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윤석열 대통령과 그를 옹위하는 무리가 당내 반대파를 밀어내는 방식은 당의 주류가 비주류에 대처하는 방식이 더는 아닌 연유에서이다. 정당성과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권력이 반정부세력을 그야말로 폭력적으로 때려잡는 방식이다.

유승민은 나경원 집단린치 사태를 윤석열 일행이 패권주의에서 폭정으로 불가역적으로 이행했음을 알리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파악·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은 오직 민심만 바라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가리킨 새로운 길은 이제 아무래도 국힘의힘 바깥에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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