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히틀러...작품 된 바나나

7월 26일까지 리움미술관 개인전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빼꼼히 열린 냉장고 안엔 식료품 대신 한 여인이 들어 앉아 쳐다보고 있고, 침대엔 정장 차림의 쌍둥이 같은 두 남성이 반듯이 누워있다. 황당한 설정이다. 어떤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지 당황스럽게 만든다.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천으로 덮은 시신들도 예외는 아니다. 교황이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는 모습은 또 어떤가. 짓궂은 농담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까.

오는 7월 2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전시장 풍경이다. 이 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의 국내 첫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장 바닥을 뚫고 얼굴을 내민 남성은 또 뭔가.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고졸출신의 작가는 다양한 직군을 경험 한 뒤 가구디자이너로 일하며 비로소 미술계에 몸담게 된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형상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서구의 다다이즘 전통의 ‘블랙유머’를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가치나 질서를 부정하고 야유하는 모습이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무릎을 꿇은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생전에 참회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이 기묘한 모형을 통해 여전히 잔존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열하게 고민하도록 한다. 히틀러는 죽었지만 학살과 혐오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유령과 같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듯하다. 이미지를 통해 민감한 주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질문하고, 토론하도록 한다. 히틀러가 참회한다면, 용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진정한 용서와 화합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진정 과거로부터 가르침을 얻어 더 나은 미래로 나가고 있는 걸까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커다란 벽에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한 개도 작품으로 출품된다. 지난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출품해 화제가 됐었다.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0,000달러에 팔린 것부터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써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러나 그저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되었고 몰려든 인파로 인해 부스 운영이 어려워지자 결국 작품을 내린 갤러리의 선택까지, 이 작품은 거듭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카텔란이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판단하고 작품의 미적,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미술 제도를 회피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운데 뛰어들어 그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바나나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점차 썩어갈 운명인 바나나는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든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이토록 비싼 값에 팔린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수많은 사물 중에 왜 하필 바나나였을까요?

카텔란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관행과 질서, 권위와 신념을 재고하도록 한다. 작품들은 어느 연극의 장면 같은 모습이다. 미래파 ,다다이즘과 더불어 태동한 퍼포먼스를 연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의 연극성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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