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 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만든 사람들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속의 주인공 엄석대를 언급하며 현재 자당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비유했다. 물론 엄석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엄석대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데에 반론이 없을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곧바로 “어찌 우리 당 대통령을 무뢰배 엄석대에게 비유를 하나”라며 이준석 전 대표에게 핀잔을 날렸다. 이에 대해 이준석 전 대표는 “다들 각자의 생각대로 연상하는 것은 자유”라며 반박했다. 그러자 다시 홍준표 시장은 “착각에 휩싸인 어린애의 치기에는 대꾸 안 한다.”며 재 반박했다. 유치한 설전이다. 둘 다 엄석대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엄석대의 잘못인가, 엄석대에게 저항하지 못한 반 아이들의 잘못인가? 이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엄석대는 담임선생님에게 위임 받은 학급장의 권위로 반 아이들을 괴롭히고 물건 뺐고 따돌리며, 반에서 독재자로 군림했다. 반 아이들은 엄석대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엄석대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새로 전학 온 한병태는 엄석대가 이루어 놓은 ‘힘의 제국’에 저항했지만 결국 무릎 꿇었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지난 1일 이준석 전 대표가 '양두구육' 발언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개고기'에 빗대고, '신군부'라는 표현을 쓴 점과 관련해 당 의원총회의 추가 징계 촉구 의견을 존중한다는 입장문을 내놓은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거부할 수 없는 미래'라는 책을 통해 엄석대=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점 아니까? (사진=연합뉴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나선 그의 등장에 보수는 열광했다. 마치 영웅이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일사천리로 전열이 가다듬어지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그렇게 윤석열의 힘의 제국이 등장했다. 윤석열과 경쟁했던 이들은 하나 둘 공공연하게 밀려나고 좌천됐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이준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공이 컸으나 그도 결국 내팽개쳐졌다. 임기 10개월이 된 현재 윤 대통령의 힘의 제국은 검찰 친위대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줄지어 ‘윤핵관’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며, ‘윤 제국’의 핵심이 되고자 치열하게 두각을 나타내려고 애썼다. ‘윤핵관’들은 거품물고 ‘반윤’을 철저히 배제하고 내쫓았다. 정치인 유승민, 이준석, 나경원, 안철수는 대표적인 배제된 ‘반윤’이다. 물론 안철수는 현재 당대표 후보로 뛰고 있으니 “윤대통령과 함께한다”는 그의 말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당대표 출신 이준석은 대선이 끝나자 곧바로 팽 당했고, 당대표로 출마하고자 했던 나경원은 ‘해임’당하며 ‘윤핵관’에게 굴욕적으로 무릎 꿇고 애써 웃는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서야했다. 안철수 현재 당대표 후보는 윤대통령에 대한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가 융단폭격을 맞고, 그야말로 조용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모두 ‘윤 제국’에 무릎 꿇었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엄석대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오자 이내 권력을 잃는다. 그러자 친위대가 됐던 반 아이들은 엄석대에게 등을 돌리고, 그에게 돌을 던졌다. 하지만 엄석대의 힘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을 엄석대에 빗대어 힘의 제국이 엄석대처럼 무너질 것이라며 한병태에게 힘을 싫어 달라고 호소했다. 자신을 한병태와 동일시하며 윤대통령의 힘의 제국에서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준석은 그 제국을 만드는데 앞장선 장본인이다.

엄석대에게 충성하며 줄을 섰던 반 아이들은 ‘윤핵관’이나 지금의 검찰조직과 다름없다. 엄석대가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권력의 눈치를 보며 한병태에게 돌을 던졌던 그들은 마치 오늘의 여의도 정치를 보는 것 같다. 검찰을 앞세워 야당을 탄압하는 ‘윤 제국’의 끝은 어디일까. 새로운 선생이 등장해서야 힘을 잃은 엄석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누가 새로운 선생이 되어야 하는가. 

소설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한병태는 결국 엄석대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이준석은 그런 한병태에게 힘을 싫어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현재 투표가 진행중인 당대표 선거에서 천하람 후보를 적극 밀어달라고 말이다. 자신은 무릎 꿇는 한병태가 되지 않겠다는 간절한 발버둥이다. 이준석은 한병태가 될 수 있을까. 

이준석의 표현대로 윤 대통령은 ‘그들(보수)의 일그러진 영웅’이 돼 버렸다. ‘민주당의 횡포’를 끝장내겠다며 기세 등등하게 영웅처럼 등장했던 윤석열은 당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긍정지지율이 부정지지율을 넘은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만들어진 영웅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보수진영에서 ‘급조’된 영웅이었다. 그래서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이준석의 표현대로 ‘일그러진 영웅이 돼 버린 윤석열’ 현상은 사실 윤석열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권력을 휘두른 엄석대만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한 반 아이들도 책임이 있듯이 말이다. ‘윤핵관’과 거기에 줄서는 검찰조직, 더 나아가서는 보수진영의 ‘급조된 영웅 만들기’에 문제의 근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머리에 왕관을 쓰고 레드카펫을 밟은 지 10개월 만에 윤 대통령은 이미 많은 보수당 지지자들에게 서도 기대를 잃었다. 윤 대통령을 찍은 보수 지지자들에게서 나오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고백이 이제는 놀라운 것도 아니다.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를 찍을 경우)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던 안철수 후보의 예견이 현실이 된 셈이다. 윤대통령의 레임덕은 그의 임기 시작과 함께 시작됐다. 윤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새로운 문제로 문제를 덮는 방식이다. 하루가 멀다 하게 새로운 논란이 발생하고, 그 논란이 해명되거나 해결되기도 전에 또 새로운 논란이 터져서 언론을 도배한다. 악순환이다. 

힘 없는 한병태는 결국 엄석대를 견제할 수 없었다. 이준석의 바람 대로 힘이 실린 당대표 한병태라면 모를까.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생태계는 여전히 ‘윤 제국’의 지배하에 있다. 천하람 후보가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낮은 게 현실이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오지 않는 한 엄석대의 횡포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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