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렇게 변했을까요? 지난달 2월 22일 수원 행 지하철 안에서 20대 젊은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가 옆자리에 앉은 80대 노인이 불편하니까 다리를 좀 치우라고 말하자 온갖 폭언과 욕설을 마구 퍼부었습니다.

아이디 'hwc***'라는 분이 올린 이 동영상은 지난달 22일 오후 5시 쯤 수원으로 가는 전철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며, 이 노인에게 한 대, 칠 듯이 팔을 휘두릅니다.

“너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이 00 개ㅇㅇ야,” “이 XX 놈아 나와, 나오라고” 마침 옆자리에 앉았던 60대 노인이 젊은이를 만류했지만, 역시 반말로 “비켜, 비키라고”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옆에 젊은 남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누구 한 사람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도 없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합니다.

<더 아픈 사랑을 위하여>라는 책이 있습니다. 허영자 선생의 이 수필 집에, 『겸손(謙遜)한 사람은 참 아름답다.』라는 글과 같은 책을, 자녀에게 어려서 부터 가르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함께 공유하면 좋겠네요.

【​겸손(謙遜)이란 참으로 자신 있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인격(人格)이다. 자신(自信)과 자부심(自負心)이 없는 사람은 열등 의식(劣等意識)이나 비굴감(卑屈感)은 있을지언정, 겸손한 미덕(美德)을 갖추기 어렵다. 겸손은 자기를 투시(透視)할 줄 아는 맑은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다.

자기의 한계(限界)를 알고, 한정(限定)된 자신의 운명(運命)과 우주의 영원 무변성(永遠無變性)과를 대비할 줄 아는 분별력(分別力)을 가진 사람만이 겸손할 수가 있다. 또한 겸손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 혹은 무생물(無生物)의 모든 것까지, 애련(愛憐)히 여기는 마음에서 유래(由來)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함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자연(自然)의 모든 뜻, 옆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事物)을 모두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겸허(謙虛)함을 가진 이의 삶은 경건(敬虔)하다.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함부로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으며, 함부로 속단 하지 않고, 운명(運命)을 수긍(首肯)하며, 인내하고 사랑함으로써 극복하는 이다.

그런 사려(思慮) 깊은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겸손해지자. 앞서지도, 뒤 처지도 말자. 함께 어깨를 나란히 고개 돌려 마주 볼 수 있게 만 하자. 소리가 너무 크면 귀가 상(傷)하고, 모양(貌樣)이 너무 밝으면 시선(視線)이 피로하다.

먼저 나를 보자. 그리고 너를 보자. 칭찬은 남이 주는 거다. 자신을 비추려 하지 말자. 지나침은 침묵(沈默)을 불러오고, 설치면 이웃이 외면(外面)한다. 자랑은 벌거벗은 나를 들어내 보이는 거다. 우리 바위처럼 살자. 쉴 새 없이 떠 벌이는, 앵무새는 되지 말자. 우리 조금은 비워두고 겸손(謙遜)해지자.】

어떻습니까? 저의 <스승님 팔 훈(八訓))> 중의 한 조목이 <겸양(謙讓) 이상의 미덕(美德)은 없다.>입니다. 겸양은 참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저 잘났다고 큰소리 지르고,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완장을 차고 나면 권력 맛에 취해 인간성마저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 한 테나 대들고, 약자에게는 아무 때나 짖어 대며, 강자에게는 꼬리를 흔들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완장을 찬 사람은 예의와 겸손이란 말을 들어보기나 했을까요?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 권력 맛에 취해 남을 괴롭히는 재미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요즘 국회에서 날뛰는 어느 장관 모습은 참으로, 기관(可觀)입니다.

겸양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이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 이는 남을 존중하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 태도와 자세일 것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우리 사회는 겸손은커녕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을, 실 증 하듯 큰소리치고, 난리 치는 것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저지르는 것을 무슨 자랑으로 여기고, 상대를 제압했다는 둥, 동물적 본능을 자랑스럽게 표출하는 저질 정치인들이 날뛰고 있는 것은, 여간 걱정이 아니네요.

‘가톨릭 윤리 신학’에 <7 죄 종(七罪宗)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7가지의 뿌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근간이 되는 뿌리를 ‘교만(驕慢)’이라 했습니다.

‘내가 잘 안다.’ ‘내가 다 안다.’라는 생각이 결국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며, 그 교만에서부터 나와 이웃들에게 아픔을 주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를, 이러한 아픔을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덕목이 바로 겸양이 아닌지요?

겸양은 수용의 자세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의 자세입니다. 또한 겸양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단절’과 ‘분열’의 사회 속에서 겸양의 미덕이 더욱더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가르쳐야 하는 미덕이 겸양이 아닐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3월 31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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