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생명’ 민식이법 유명무실 

지난 4월 8일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학교 인근 교차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60대 남성이 만취 상태로 인도를 덮쳤다. 사고로 배 양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졌고 다른 9~12세 어린이 3명도 부상을 입었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이었으며, 경찰은 운전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및 위험 운전 치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음주운전 사고로 배승아(9) 양이 사망한 가운데, 9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사고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사진: 어린이보호구역 내 음주운전 사고로 배승아(9) 양이 사망한 가운데, 9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사고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앞서 2021년 3월엔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11살 어린이가, 2022년 10월 경남 창녕에선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를 건너던 9살 어린이가 차에 치여 숨졌다. 지난 2020년 민식이법이 도입됐지만, 안전 사각지대는 여전하고 비슷한 사고가 멈추질 않고 있다. 학교 앞 경사진 도로로 차들이 배회하고 있지만,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전용 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일컫는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민식 군(9)이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발의됐다. 스쿨존에서 안전운전 위반으로 만 12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게 골자다.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구속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 2022년 시행 3년째를 맞이한 ‘민식이법’ 위반으로 기소된 운전자들 대부분이 집행유예와 벌금형 선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억울한 운전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법 폐지 혹은 개정 주장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2022년 5월 23일,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개정안’(민식이법)이 적용된 스쿨존에서의 아동 치사·상 1심 판결 173건(2020년 3월~2022년 3월)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8건에 불과했다. 대신 징역형에 집행유예가 76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벌금형이 67건,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7건이다.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8건으로, 실형 선고 건수와 동일했다.

▶ 5명 중 1명은 ‘상습 음주운전자’

대한민국의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는 5.9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4.7명 보다 1.3배 많은 수준이다.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도 1.1명으로 OECD 평균 0.8명의 1.4배 수준이다. 

음주운전
사진: 음주운전

2021년 5월 28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8∼2020년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5만2천336건으로 집계됐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2018년 1만9천381건에서 2019년 1만5천708건으로 줄었다가 2020년 1만7천247건으로 반등했다.

또 3년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928명, 8만6천976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0.8명이 숨지고 79.4명이 다친 셈이다.

이와 함께 최근 3년(2019~21년)간 2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자가 16만2102명 적발됐다. 특히 1년 내 음주운전 재범자도 2만9192명로 나타났다.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인원도 7만4913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음주운전자 5명 중 1명은 3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상습 음주운전자라는 것이다.

현행 도로교통법 일반 규정은 운전면허 정지 수준(0.03% 이상 0.08% 미만)이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은 ‘1년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이면 ‘윤창호법’의 양형과 같은 ‘2~5년 징역이나 1000만~2000만원 벌금’이 적용된다. 음주측정 거부 행위에는 1~5년의 징역형이나 500만~2000만원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민식이법에 앞서 1년 6개월전 군인병사가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이 발생한다. 윤창호 사건은 2018년 9월 25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서 발생한 음주 운전 교통사고로 육군 병사 윤창호가 숨진 사건이다. 

당시 음주운전 사망 사고 피고인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은 최대 징역 4년 6개월이며 2015∼2017년 음주운전 사망 사고 피고인의 평균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이었다.

윤창호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 친구들과 가족이 음주 운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을 벌여 제도의 변경을 이끌었다. 음주 운전 관련 가해자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이끌어 냈고 이른바 윤창호법이 발의되어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하여 시행되었다. 이 사건 이후 음주 운전과 관련된 처벌이 강화되었으며, 단속 기준도 강화되었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로 요약되는 ‘윤창호법’이 얼마전 법리적 보완을 거쳐 다시 국회를 통과했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하고 있는 위헌 사유를 보완하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22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앞서 2022년 8월 음주운전이나 음주측정 거부를 2회 이상 한 사람을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거듭된 위헌 결정으로 효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었다. 2022년 8월 31일 헌재는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도로교통법 148조의2 1항의 처벌 대상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21년 11월과 2022년 5월에 이은 세 번째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말부터 도로교통법 제148조의 2 제1항(소위 윤창호법) 중 2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경우, 음주운전 전력자가 다시 음주측정거부를 한 경우, 음주측정거부 전력자가 다시 음주운전을 하거나 음주측정거부행위를 한 경우 각 가중 처벌하도록 한 부분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2022년의 12월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기존 음주운전 예방 차원의 취지는 같지만 재범까지 시간을 고려하고 혈중 알코올농도의 정도도 세분화해 감안된 것이다. 혈중 알코올농도가 0.2% 이상인 사람은 2년 이상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 혈중 알코올농도가 0.03% 이상 0.2% 미만인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 벌금 등은 기존 법안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다.

▶ 실효성 높은 ‘사전 프로그램’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는 오는 4월 24일 지난 2월 마련한 스쿨존 내 상해·사망 등에 대한 양형기준을 확정한다. 스쿨존 교통사고 관련 첫 양형기준이다. 

12일 오전 대전 대덕구 오정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이동하거나 주·정차 중인 트럭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 12일 오전 대전 대덕구 오정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이동하거나 주·정차 중인 트럭들로 붐비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스쿨존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 음주운전으로 어린이를 다치게 할 경우 최대 10년6개월형, 어린이가 숨질 경우 최대 15년형이 권고된다. 또 교통사고 후 도주할 경우 형량도 최대 6년에서 7년으로 높였다. 이와 함께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 만취 상태에서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뒤 어린이를 숨지게 하고 도주할 경우, 가중처벌에 따라 최대 21년형까지 가능해진다. 이런 양형기준은 개별 판사에게 구속력은 없지만 기준을 벗어나 판결할 경우 이유를 판결문에 명시해야 한다.

양형위가 음주운전 등 교통범죄 양형기준을 높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형위는 2012년 처음 교통범죄 양형기준을 마련한 이후 2016년과 2021년 양형기준을 거듭 높여왔다. 하지만 국민 법 정서에 견줘보면 양형기준은 여전히 낮다. 

거듭된 ‘솜방망이 처벌’에 양형기준을 법정형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양형위는 부정적이다. 교통범죄 양형기준만 높이면 다른 범죄와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형이 동일한 다양한 범죄가 있는데 교통범죄 양형기준만 급격하게 높이면 전체적으로 균형성과 통일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지난 10년간 매년 2만건대 이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감소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적으로 음주운전이 교통사고의 중요한 원인이며, 신체적 정신적 피해뿐만 아니라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음주운전의 피해가 음주운전자 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 및 피해를 고려한다면 음주운전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음주운전 예방은 교통안전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제는 ‘처벌 강화’보단,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회전 차량으로 보행자 사고 위험이 높은 지역에는 우회전 전용 신호등 설치와 함께 보행자 통행이 잦은 이면도로의 제한속도를 20km/h로 낮추는 방안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북미와 호주 및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비롯한 유럽 몇 개국에서의 시동잠금장치 장착 의무화 이후 독일에서도 시동잠금장치 도입에 대한 논의의 진척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시동잠금장치에 대한 사용은 각 나라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되고 있기에 일단 한국에서도 자율적으로 시동잠금장치를 사용을 검토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따라서 이런 시도는 기본권 및 지속적 음주운전예방이라는 실효성을 위해 회복수단과 함께 도입될 때에는 안정적인 행동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교통영역에 있어 제반 프로그램을 촘촘히 구축하여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가능성 및 위험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며, 교통참여자가 이러한 사실을 숙지하고 운전행동 및 예방에 대한 책임감이 강화되는 교통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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