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부 ‘도청 기밀문건 파장’ 

지난 6일 온라인상에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내용을 다룬 미 국방부 기밀문건 100여 건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유포됐다. 여기에 한국 외교·안보 고위공직자와 논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청 의혹이 점화됐다. 얼마 전 물러난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의 3월 초 대화 내용이 옆에서 엿들은 듯 생생하다. 

체포되는 기밀 문건 유출 피의자 잭 테세이라=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기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잭 테세이라(21)를 자택에서 체포해 압송하고 있다. 2023.4.13 [WCVB-TV/AP 제공]
사진: 체포되는 기밀 문건 유출 피의자 잭 테세이라=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기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잭 테세이라(21)를 자택에서 체포해 압송하고 있다. 2023.4.13 [WCVB-TV/AP 제공]

핵심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포탄을 공급하라는 압력을 가할 가능성을 놓고 한국 공직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이 포함된 것이다. 문건에는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지금까지의 정책을 변경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공식 천명하는 방안을 거론하자,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이달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회담과 무기 지원을 거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 정보 출처가 신호정보(SIGINT) 보고라고 명기된 점이다. 이는 한국 정부 내부의 논의를 도청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대한민국 대통령실에 속한 국가안보실을 도청하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 외교·안보 수뇌부의 보안에 큰 취약점이 노출된 것임을 뜻한다. 한-미 동맹의 신뢰를 뒤흔드는 것이자, 주권 침해 소지가 크다.

그간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독면과 방탄조끼, 의약품 등을 보내왔지만 국내 법률상 제약으로 인해 살상 무기의 직접 제공은 거부해왔다. 현재 한국은 공공연하게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특히 유럽과 미국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방산 역량을 지속해서 끌어올린 만큼, 지속적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비축량도 계속 보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대러시아 안보 최전선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안정적인 무기 조달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 10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에 대해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현행 대외무역법 등 관련 규정으로 인해 ‘평화적 목적’이 아닌 무기 수출이 어려우며, 국내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미국의 도청 파문은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국익을 심히 훼손시킨 심각성 못지않게 한-러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는 점이다. 

韓美 정부의 대응 ‘엇박자’ 

11일 대통령실은 “정부의 도·감청 의혹에 대해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발표한바 있다. 아울러 “용산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운용 중에 있기에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었다.

대통령실 건물(오른쪽)과 국방부·합참 청사 = 미 정보기관이 대통령실 고위 관리를 감청한 정황이 외신 보도를 통해 제기된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에 대한 도·감청 대비는 충분하다고 10일 밝혔다.
사진: [대통령실 건물(오른쪽)과 국방부·합참 청사] = 미 정보기관이 대통령실 고위 관리를 감청한 정황이 외신 보도를 통해 제기된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에 대한 도·감청 대비는 충분하다고 10일 밝혔다.

여기에서 피해자인 우리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에게 저항을 받을 것”이라 으름장을 놓은 사실이다.

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인근 덜레스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도청 의혹과 관련해 ‘미국 측에 어떤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현재 이 문제는 많은 부분에 제3자가 개입돼 있으며 전달할 게 없다. 누군가가 위조를 한 것이니까”라며, 마치 미국 측 입장인 것처럼 대변했다. 진상 규명은커녕 재발 방지 요구조차 일축한 셈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인 미국의 입장은 과연 어떠할까? 미국 측에서 발표한 내용은 한국과는 매우 상이하다. 지난 11일(한국시각)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국방부가 문건의 유출 과정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동맹국들을 상대로 도청 한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한다. 미국은 “이 같은 종류의 문서가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또 우리는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자인한 것이다. 

이처럼, 야당과 시민단체의 사실 규명과 철저한 진상조사 요구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미국의 도·감청 의혹은 우리나라에 대한 주권 침해로 한미동맹의 굳건한 신뢰를 심대하게 훼손한 처사”라며 “미국은 우리 정부에 책임 있는 해명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서두르고, 대통령실 보안 강화를 위한 입법 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실질적 언급은 대여 정치공세가 아닌 국익 수호 관점에서 진실하게 표현된 것이다. 

“도대체 대통령실이 왜 미국도 인정한 사안을 먼저 나서서 미국의 대변인마냥 부인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단체가 미국의 도·감청 의혹을 우리 정부가 부인하고 축소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불법적 도·감청에 항의조차 못하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 대미 외교정책이 개탄스럽다”고 강조했다. 

美 대사관 건립 ‘15년만 완공’ 

“내가 당신 이메일이나, 당신 아내의 핸드폰을 보고 싶으면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당신의 이메일이며 비밀번호, 통화기록, 신용카드까지 알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애드워드 스노든)

2013년 6월 5일 수요일. 세계는 미국의 전 세계 도감청 파문에 휩싸인다. 영국 가디언이 전직 美정보분석가 애드워드 스노든를 통해 “미국 정부가 미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전화와 이메일 등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사진: 마인크래프트 어스= 기밀문서들은 마인크래프트 어스 지도 관련 비공개 대화방에 등장하고 약 한 달 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에 나돌았고, 친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에서도 유포되는 등 대중에도 알려졌다.
사진: 마인크래프트 어스= 기밀문서들은 마인크래프트 어스 지도 관련 비공개 대화방에 등장하고 약 한 달 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에 나돌았고, 친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에서도 유포되는 등 대중에도 알려졌다.

특히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세계 35개국 이상의 정상급 통화를 도청한 것은 물론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와 미국 주재 38개국의 대사관을 도·감청한 사실까지 폭로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우방국까지 수집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세계의 경찰로 평화를 수호한다고 하던 미국의 위상에 먹칠을 하게 됐다.

불법 정보 수집이 공공연한 비밀이고 관행이라 해도 수면 위로 노출된 것은 별개 차원의 문제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의 국가안보실 논의를 도청한 사실이 미국 기밀 문서로 드러나면서 대통령실 용산 졸속 이전 문제가 재차 떠오른 것이다. 대통령실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옮기면 도청 등 보안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일찌감치 제기된 터다.

미국은 2005년 5월 모스크바에 새 대사관 건물을 짓기 시작한 지 무려 15년 만에 2000년 5월 12일 완공했다. 공사 과정에서 기상천외한 도청장치가 끊임없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난해 5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지금의 국방부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하는데 저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시설보안이 완벽하게 된다고 보느냐, 이어 첩보전에는 우방이 없다. 국방부 대통령 집무실에다가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순간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모든 정보는 그 정보기관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라고 졸속 이전을 질타한 바 있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의 핵심부인 국가안보실을 마치 속살처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정황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분명하게 항의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이끌어내야 한다. 비록 동맹이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을 땐 모으더라도 주권 국가로서 당당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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