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 사이로 푸른하늘이 보인다..

보라 흰 구름은 다시금 잋혀진 아름다운 노래의 희미한 멜로디 처럼 푸른하늘 저쪽으로 흘러간다는 헤르만 헷세의 <흰그름>이란 싯구가 생각나는 청명한 지난 주말 난 홍성민 SM 프로모션 대표와 함께 그날 하루 4개의 행사장을 옮겨 다니면서 취재를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첫 행선지 는 여의도 물빛광장에서 개최된 아마복싱 대회였다. 여의도 공원에서 한강으로 통하는 길목 에 위치한 풍광 좋은 그곳에서 홍성민 군단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김주원 관장과 조우(遭遇) 황홀한 풍광을 음미하며 담화를 나눴다.

경기장에 도착 조철제 원로회 회장을 비롯 김승미 전 국가대표 감독 정동환 서울복싱 심판장 김수영 전무를 만났다. 구순(九旬)을 목전에 둔 조철제 전 대한복싱협회 전무는 70년대 김태호 유종만 박일천 박찬희 박태식 황철순 박인규등이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아마복싱이 아시아 무대를 평정할 때 중심축에 서 있던 인물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영주에 KO승을 거둔 정동환(좌측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영주에 KO승을 거둔 정동환(좌측

1935년 서울 청량리 출신의 조철제 회장은 하숙생을 부른 인기가수 최희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동의원. 육군참모총장 이진삼 의원. 텔런트 조춘 등과 막역지우 (莫逆之友)다. 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아마복싱의 핵심 인물은 단연 주상점 선생이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라이트급)에는 복서로 1960년 로마 올림픽 때는 국제심판으로 참관한 그는 1970년 12월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에서 심판장을 역임했다.

당시 주상점 (연세대)은 경기 오픈에 앞서 30명의 국제심판을 모아놓고 엄숙한 태도로 공정한 심판을 보도록 영어로 일장 연설을 할 정도로 외국어에 능숙했다. 주상점은 범접(犯接)하지 못할 카리스마로 타국의 국제심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분이다. 

김승미 감독 조철제회장 정동환 심판장 김수영전무(우측)
김승미 감독 조철제회장 정동환 심판장 김수영전무(우측)

73년에는 조철제 대한복싱 협회 전무가 주상점 선생의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아마 복싱을  아시아 정상권에 진입을 시킨다. 킹스컵 3연패를 달성시킨 조철제가 이끄는 한국 아마복싱은 1974년. 1978년. 두 차례 아시안게임에서 10개의 금메달을 수확하였다.

80년대는 김승연 한국화약 회장과 김성은 대표팀 감독이 1985년 서울 월드컵 대회에서 4체급을 석권 한국 아마복싱을 탈(脫) 아시아권으로 끌어 올리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김중연관장 조철제회장 홍성민 SM대표(우측)
김중연관장 조철제회장 홍성민 SM대표(우측)

오광수 김광선 문성길 권현규 김동길 이해정 홍기호 신준섭 등 주력들이 퇴진한 1990년대  각종 국제대회에서 4차례의 종합우승을 일궈낸 지도자가 김승미 감독이다. 김성은 감독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그는 장기판에 비유하자면 차(車) 포(砲)에 마(馬) 상(象)까지 빠진 최약체의 전력의 대표팀을 이끌고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재현시켰다.

김 감독은 1989년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4년 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4차례의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다.

특히 1989년 7월 북경에서 개최된 제1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LF급 조동범. F급 한광형. B급 황경섭. FE급 이훈. LM급 미들급의 유창현. M급 정동환. LH 급 박세종. H급 채성배등 8체급을 석권했다. 박수 를 쳐 주고 싶은 대목이다.

박종팔챔프 오홍식선수 홍성원 2관 관장(우측)
박종팔챔프 오홍식선수 홍성원 2관 관장(우측)

그 대회 M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복서가 바로 현 서울복싱협회 정동환(한국체대) 심판장이다. 1969년 전남 담양 출신의 정동환은 1988년 전국체전 미들급 결승에서 고요다 (원광대)를 판정으로 꺽으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한미 국가대항전과 아시아선수권을 재패 국제대회 2관왕을 달성했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정동환이 탄생한 전남 담양은 고산 윤선도와 함께 가사 문학의 쌍벽을 이루던 송강 정철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런 유서 깊은 고장 담양에서 80년대 최고의 복서 김동길 1991년 호주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김석현(동국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획득한 LH 급의 고영삼(호남대)이 탄생했고 프로복싱으로 눈을 돌리면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 IBF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장태일이 배출되었다.

볼리비아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장윤호와 박용운(우측)
볼리비아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장윤호와 박용운(우측)

2번째 행선지는 더케이 호텔에서 개최된 국가대표 복싱선수 장윤호의 아들 결혼식장이었다. 1959년 전주 출신의 장윤호는 전라중 졸업반인 1975년 제25회 학생선수권 (밴텀급) 준결승에서 김수영을 결승에서 왕수상을 꺽고 우승을 차지한 유망주였다.

이후 남산 공전에 진학 유제형 김지원과 트로이카를 형성 남산 공전 전성기를 구축한다. 1976년 학생선수권대회(페더급)에서 5전 5KO승을 거두며 최우수 복서(MVP)에 선정된 장윤호는 1978년 학생선수권(라이트급)을 재패 한다. 탄력을 받은 장윤호는 제2회 세계선수권 선발전에서 난적 김응식(동아체)을 잡는 대이변을 창출 하면서 성인무대 마져 접수한다.

이현우 심판위원 김승미 감독 김재봉 신판위원(우측
이현우 심판위원 김승미 감독 김재봉 신판위원(우측

1979년 3기생으로 한국체대에 입학한 장윤호는 모스크바 올림픽 최종선발전(라이트급) 준결승전 에서 상낙석에 패해 출전이 불허된다. 1980년 1회 회장배 대회 (L웰터급) 대회를 석권한 장윤호는 그해 6월 한일 국가대항전에 학생대표로 출전 일본 대표 도꾸다를 2회 KO승을 거두며 기염을 토했다.

1981년 12월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발탁된 장윤호는 1982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선발전에서 그해 뉴델리 아시안게임(웰터급) 금메달리스트인 정용범을 제압하며 킹스컵.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볼리바컵에 연속적으로 출전하면서 올림픽 탈락의 아쉬움을 달랬다.

98전 91승(76KO) 7패를 기록한 장윤호는 은퇴 후 한국체대 총 동문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지근거리 (至近距離) 에서 보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그는 (주) YH 주식회사 대표를 맞고 있다. 장윤호는 필자에게 김승연 회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은 생명을 걸고 지키는 상남자라고 말하면서 김승연 회장의 퇴장과 아마복싱의 몰락이 맞물려서 참으로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혔다.

임계룡 관장 이경연챔프 박종팔 챔프 홍성민 대표 (우측)
임계룡 관장 이경연챔프 박종팔 챔프 홍성민 대표 (우측)

3번째 행사장을 거쳐 마지막으로 참관한 곳이 강남에서 벌어진 프로복싱 경기장이었다. SM 프로모션 오홍식의 4회전 경기를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2005년 서울시 양천구 목동 본관을 개관하면서 시작된 SM 복싱클럽은 전국에 16개 관을 보유하고 있는 전국최대규모의 복싱 체인점이다. 홍성민 대표가 수장(首長)으로 활동하는 SM 프로모션은 생활 복싱 저변 확대와 엘리트 선수양성을 겸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올 신인왕전 준우승자인 오홍식을 비롯 7전 6승 1패를 기록한 신인왕 출신의 설민석 5전 4승 1패를 기록한 정태원등 다수의 프로 복서들이 활약하고 있다. 현장에서 최요삼 최준욱 홍성민 관장과 어우러져 용산공고 복싱부 역사에 한축을 담당한 임계룡 크로스체육관(은평구) 관장도 보인다.

1992년 용산공고 재학시절 코크급 에서 공두환 (군산고). 김창현(리라공고)을 잡고 김명복 박사배와 학생선수권을 재패한 복서다. 1993년 동아대에 진학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임계룡은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장엔 WBC 슈퍼 미들급 박종팔 챔프를 비롯 IBF 초대챔피언 이경연 챔프가 동반 참석 분위기를 띄웠다. 요즘 은퇴 후의 박종팔 챔프의 행보를 지켜보면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오버랩 된다. 미국의 39대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보다 퇴임 후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 하는등 현직에 있을 때 보다 인기가 더 좋았던 전직 대통령이었다.

WBC 슈퍼 미들급 박종팔 챔프 역시 현역 은퇴 후 제주 권투 위원회(KJBC) 상임고문으로 위 촉 되면서 각종 강연과 예능방송을 통해 복싱 홍보에 앞장을 서고 있다. 특히 2022년 4월 <국대는 국대다> 란 방송프로에서 이벤트 경기로 현역 WBC 아시아 웰터급 실버 챔피언 정민호 선수와 대결에서 60대 중반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꺼져가는 한국프로복싱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링에 오른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조철제회장과 YH건설 장윤호 대표이사(우측)
조철제회장과 YH건설 장윤호 대표이사(우측)
홍성민 대표와 김주원관장(우측)
홍성민 대표와 김주원관장(우측)

경기장에서 신임 이현우 심판과 베테랑 김재봉 국제심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1948년 정읍 출신의 올해 75세인 김재봉 심판은 노병렬 선생에게 복싱을 사사(師事) 받은 한국체육관사단의 핵심 인물이다.

1975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1979년부터 동국대 김진영 선생과 함께 아마복싱 심판위원으로 활약한 김재봉 심판은 1983년 프로심판으로 위촉되어 1992년 한국권투 위원회 최우수심판으로 위촉되어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다.

1973년 경북 청도 출신으로 올해 50세인 이현우 심판은 2019년 입문한 프로복싱 KBM 심판이다. 이현우는 준수한 외모에 깔끔하게 경기를 진행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모범심판이다. 복싱 현장을 취재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복싱인들에게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컬럼 을 마무리한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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