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가 배상금 1조원의 거액을 물게 되어 큰 화제다. 미국 방송매체인 폭스(Fox) 방송사가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후 반복적으로 방송한 ‘개표기 조작’ 의혹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Dominion)에 7억8천750만 달러(약 1조391억 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가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2020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내보낸 부정선거 의혹 보도였다. 폭스는 투개표기 제조업체인 도미니언이 바이든 당선을 위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을 수 있다고 집중 보도했다. 

대선 투표용지 재검표 하는 미 조지아 선거사무원= 미국 조지아주 로렌스빌의 선거사무소에서 11월16일(현지시간) 그위닛 카운티 선거사무원들이 11·3 대선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재검표하고 있다.
대선 투표용지 재검표 하는 미 조지아 선거사무원= 미국 조지아주 로렌스빌의 선거사무소에서 11월16일(현지시간) 그위닛 카운티 선거사무원들이 11·3 대선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재검표하고 있다.

당시 50개 주 가운데 28개 주에서 도미니언의 투개표기를 사용했다. 도미니언측은 전혀 사실무근의 가짜뉴스에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2021년 3월 폭스를 상대로 16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폭스 방송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7억 8750만 달러(약 1조 391억원)의 배상금을 물어내기로 합의했다. 폭스의 배상액은 지난해 매출의 5%로 미국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개된 합의금 중 가장 큰 액수일 뿐만 아니라 가짜뉴스 유포에 대한 엄중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폭스는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상황에서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당시 폭스의 가짜뉴스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을 지펴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자유민주주의의 표상인 연방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미국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상징적 절대 가치로 여기며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거액의 배상 조치가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가짜뉴스의 사회적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입증해준 사례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가짜뉴스에 대해선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과 절대 관용이 없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이 판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정착됐다고 평가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8회원국 중에서 한국처럼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라는 지적이다. 휴대폰,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가 되면서 가짜 뉴스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 혼란과 갈등으로 국력 소모와 폐해는 막대한 수준이다. 가짜뉴스와 괴담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을 혼란시킨 가짜뉴스, 괴담은 “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광우병 사태를 비롯해 천안함, 세월호, 사드 전자파 괴담, 이재명 대표가 어릴 때 소년공이 아니라 ‘소년원 출신’이라는 둥, 최근엔 청담동 술자리, 일광횟집 친일몰이 등 악의적 허위 뉴스에 우리 국민들은 휘둘려 왔다. 우후죽순처럼 범람하는 유튜브, 소셜미디어(SNS) 등 유사 언론의 토대 위에서 특정 정치 세력이 정략적으로 생산, 유포하는 가짜뉴스는 극단적 팬덤 정치와 결합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상대방을 악랄하게 폄하하며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소셜미디어 환경을 만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이런 환경을 틈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가짜뉴스를 악용하는 사례가 넘쳐난다. 이는 팬덤 정치와 결합해 확증 편향을 증폭시키고 증오와 공격성을 강화해 국가 질서를 흔들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가짜뉴스는 유튜브, 카카오 톡, 이메일과 같은 SNS를 매개체로 사통팔달 만연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국격까지도 추락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어 엄정한 법적 규제가 요구되고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85.2%가 가짜뉴스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77.6%가 ‘법적 처벌 강화’를 꼽고 있다. 허위 뉴스 생산과 유포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뉴스 소비자의 감시 기능과 사회적 검증 수단 강화 등 가짜뉴스를 근절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으로 엄벌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돈벌이나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일부 유튜버와 SNS 등은 언론중재법상 언론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적 책임에서 자유롭다. 사이버 모욕죄나 인터넷 명예훼손죄 등이 있으나 입법 취지가 가짜뉴스 제재가 아닌 만큼 한계가 따른다. 이번 1조원 배상 사례처럼 거짓말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르고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정치는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점을 깊이 각인시켜야 한다. 

1인 미디어 시대에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유포하는 가짜뉴스는 설령 면책 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도 엄격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물론 언론단체에서 우리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가짜뉴스를 퇴출시킬 방법을 심도있게 논의해서 엄정한 법적 규제 토대를 세워야 한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 사회에 미치는 해악과 위험성에 경종을 울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제 거짓말 시대는 끝내야 한다.  

최충웅(언론학 박사) 주요약력 
ㅇ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ㅇ 경남대 석좌교수
ㅇ YTN 매체비평 고정 출연
ㅇ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ㅇ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ㅇ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ㅇ 방송통신학회 수석 부회장
ㅇ 방송통신연구원 부원장
ㅇ KBS 예능국장, TV제작국장, 총국장, 정책실장, 편성실장
ㅇ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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