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주항선 목포복싱협회장의 전화였다.

4월 26일 수요일 오전 10시에 목포시청 실업팀이 창단식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소식을 접하고 장정구 챔프와 동행 목포에 도착한 필자는 주항선 복싱협회장을 비롯 주 회장의 은사(恩師)인 최진태 관장을 차례로 만났다.

올해 목포에서 개최되는 104회 전국체전을 전환점으로 목포시청 복싱팀을 전격적으로 창단하고 본격적인 항해(航海)에 돌입한 것이다.

이번 목포시청팀 창단식에는 산파(産婆)역을 담당한 박홍률 목포시장을 비롯 김성대 목포시 체육회장. 이경환 후원회장 그리고 신재식 김종진 목포시청 대표 선수들을 포함 80여명의 복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2015년 전국 복싱 신인왕전에 참관한 권노갑 의원
2015년 전국 복싱 신인왕전에 참관한 권노갑 의원

목포 복싱의 효시(嚆矢)는 해방 후 광주 출신의 정봉현 선생이 목포권투 구락부 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강 세철 (목포상고)과 3년 후배 권노갑 전 새천년 민주당 고문이 복싱에 입문 목포복싱의 동력이 가동된다.

해방 후 목포에 정착한 강세철은 1960년 11월 한국인 최초의 동양 챔피언에 등극했고 권노갑은 중학교 3학년 때 복싱에 입문 목포 상고를 시절 전남 대표로 활약했다. 이후 맥(脈)이 끊긴 목포 복싱을 부활시킨 지도자가 최진태 관장이다. 

82년 아시안게임 권현규의 경기장면 (좌측)
82년 아시안게임 권현규의 경기장면 (좌측)

1946년 목포 출신의 최진태 관장은 화려한 선수 생활을 영유(領有)한 복서는 아니었지만  강준호 선생에게 체계적으로 지도자수업을 받으며 70년대 중반 목포에 복싱체육관을 설립한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출전 밴텀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강준호는 지도력이 출충한 트레이너로 정평(定評) 이 난 인물이다.

가수 남진의 중학교 1년 후배인 최진태 관장은 해병대 기수로는 남진의 선배로 두 분은 각별한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1977년 개최된 제58회 전국체전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목포 덕인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컴퓨터 복서>라 불린 주항선 이었다.

주항선 은 결승에서 57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전북 대표 강월성(익산 남성고)을 판정으로 잡으면서 LW급 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웰터급에서는 동료 복서 황충재 (영산포 상고)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권현규 감독 주항선 회장 최진태 관장(우측).
권현규 감독 주항선 회장 최진태 관장(우측).

조선대에 입학한 주항선은 1980년 8월 제10회 대통령배 대회 LM급 결승에서 전북 대표 김현호를 군말 없는 판정으로 잡고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전국체전 3회 우승에 김명복배 4연패를 달성하면서 82년 제10회 아시아선수권을 재패한 천하의 김현호도 주항선 의 컴퓨터처럼 정교한 복싱에 백기를 들었다. 1981년 김명복배 M급 결승에서 신준섭(남원농고)을 판정으로 잡고 금메달을 획득한 청소년대표 출신의 윤영복(경희대)도 1981년 3월에 벌어진 제7회 킹스컵대회 선발전 결승에서 주항선에 반 박자 빠른 카운터 펀치에 고개를 숙일 정도로 주항선은 절정기의 기량을 발휘한다.

그해 5월 필리핀에서 벌어진 제1회 마르코스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주 항선은 8강전에서 덴마크의 구나르 버그에 판정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획득한다. 최진태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주항선 은 초창기 자갈밭처럼 험난한 목포복싱을 반듯하게 펼쳐진 아우토반으로 깔아놓은 개척자였다. 

김경환 후원회장. 최진태감독 주항선회장 장정구챔프(우측)
이경환 후원회장. 최진태감독 주항선회장 장정구챔프(우측)

1981년 2월 최진태 감독을 사령탑으로 이현주 권현규 장성호를 주축으로 목포대학 복싱팀이 탄생 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획득한 양정모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1977년 한국체대 탄생의 발원지(發源地) 역할을 했듯이 목포대학 탄생의 시발점(始發點)은 전국체전과 대통령배를 석권하면서 전방위에서 고군분투한 주항선의 활약 때문이었다.

그해 창단된 목포대학의 선두주자는 L급의 이현주였다. 대통령배 대회에서 김명복배 최우수복서 조규남(원광대)을 꺽고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현주는 인도네시아 대통령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상승세를 탄 이현주는 킹스컵과 마르코스배 대회에서도 은메달을 획득 초창기 목포대학의 기틀을 마련한다. 1982년 목포대학은 문성길과 전칠성이 입학하면서 기존의 장성호 권현주 이현주와 더불어 독수리 5형제 군단을 형성 국내 아마복싱을 평정한다.

세계선수권 2차 선발전에서 B급의 문성길 L급의 권현규 LW급의 전칠성이 우승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한 명장 최진태 감독이 이끄는 목포대학은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도 B급의 문성길이 금메달 L급의 권현규가 은메달을 획득 입지를 구축한다.

김광선 챔프 권현규감독 주항선 회장 장정구챔프(우측)
김광선 챔프 권현규감독 주항선 회장 장정구챔프(우측)

1983년 로마 월드컵 본선에 목포대학은 B급 문성길 L급 권현규 LW급 전칠성등 3체급에서 국가대표를 배출한다. 이들을 발탁 조련한 최진태 목포대 감독은 지도력을 인정받으면서 국가대표팀 코칭 스탶에 합류한다.

그 대회에서 LF급에 출전한 김광선이 1회전에서 미국의 로자리오를 3ㅡ2 판정으로 결승에선 소련의 에스피노자를 4ㅡ1 판정으로 잡고 금메달을 획득했고 M급에 출전한 신준섭은 홈링의 크루치아니에 와 맞대결에서 5ㅡ0 판정을 거두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L급에 출전한 목포대의 전칠성 은 결승전에서 쿠바 선수와 치열한 타격전을 펼쳤지만 아깝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대회에서 탄력을 받은 전칠성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 천금 같은 동메달을 획득한다. 1984년 8월 동국대학에서 개최된 제34회 전국선수권 대회에서 최진태 감독의 목포대학은 국내 아마복싱 무대를 평정한다. 

김광선 챔프 박홍률 목포시장 장정구챔프(우측)
김광선 챔프 박홍률 목포시장 장정구챔프(우측)

문성길 권현규 전칠성등 주력선수 3명이 불참한 가운데 치뤄진 이 대회에서 LF 장원철. B  김건호. LW 이현주. LM 우용현. M 김은동. LH 장성호. H급 윤동주. 등 7체급에서 결승에 진출 LF 장원철이 용인대 김진표를 LM에 우용현이 동국대 김동운을 LH에서 장성호가 경남대 민병용을 각각 판정으로 잡고 3체급을 석권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LH 급에서 우승한 장성호는 84년과 85년 2년 동안 전국체전과 대통령 배 대회를 포함 각종 선발전을 휩쓸며 7관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펼친다. 2년 동안 26승 1패를 기록한 장성호의 유일한 1패는 LA 올림픽 최종선발전 결승에서 신준섭에 당한 1패였다. 현재 장성호는 목포 영화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목포영화중 교장 장성호
목포영화중 교장 장성호

1985년 월드컵과 1986년 아시안게임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B급의 문성길이 국제대회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 세계적인 톱복서 반열에 진입한다.

이번에 목포시청 복싱 감독에 부임한 권현규는 65회 전국체전과 대통령배 3연패를 달성한 전형적인 클레버 복서다.

80년 고교생으로 출전한 모스크바 올림픽 선발전(밴텀급)에서 1975년 아시아선수권(필리핀) 금메달 리스트인 한창덕(중산체)을 판정으로 잡고 결승에 진출 당대 최고의 복서 황철순과 맞대결 경기에선 이기고 판정에 패했던 복서가 바로 권현규다.

1981년 목포대에 입학 제5회 김명복 박사 결승에서 이맹선(전북)을 잡고 우승을 차지한 권현규의 당시 스파링 전문 파트너가 1년 후배 문성길이었다. 권현규는 문성길의 돌주먹을 솜 주먹으로 만들면서 자유자재로 공략한 하이테크(High tech) 한복서였다.

최진태 관장과 김광선 챔프(우측)
최진태 관장과 김광선 챔프(우측)

권현규는 82년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뉴델리 아시안게임 L급 결승에서 북한의 정조웅에 분패했지만 소중한 은메달을 획득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한 문성길은 밴텀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3년 제1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권현규는 1985년 서울 월드컵 대회 8강전에서 베네주엘라의 페드로사와 대결에서 2회 2차례 다운을 탈취하고도 3ㅡ2로 패한다.

한마디로 홈에서 역(逆)으로 당한 편파판정이었다. 권현규는 1986년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태국의 퐁수리를 1회 KO로 잡고 올라온 필리핀의 레오폴드 칸탄치오를 5ㅡ0 판정으로 잡고 금메달을 획득한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칸탄치오는 1985년 태국에서 개최된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최우수복서로 선정된 복서였다. 

이후에도 목포대학은 1990년 제4회 서울컵 대회 슈퍼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정현과 1994년 12월 제8회 세계선수권 선발대회에서 LW 급 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성근등을 비롯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쉼 없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탄생시켰다.

이후 소리소문없이 목포대학이 해체되면서 세인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져 갔다.

이런 현실에서 올해 목포에서 개최될 전국체전을 기폭제(起爆劑)로 새롭게 탄생한 목포시청이 과거의 찬란한 목포복싱의 역사를 재현하길 바란다.

끝으로 목포시청 탄생에 선봉이 되신 박홍률 목포시장을 비롯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칼럼을 마친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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