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일에 ‘분신의 큰 슬픔’

지난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자 세계노동절이었다. 이런 뜻깊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인 A씨가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휘발성 물질을 몸에 끼얹고 분신했고, 결국 다음날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민주노총 강원본부,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올해 강원지역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정부 기관인 산림청을 꼽으며 벌목 현장을 도내 대표적인 노동안전 사각지대로 지목했다.
[민주노총 강원본부,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올해 강원지역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정부 기관인 산림청을 꼽으며 벌목 현장을 도내 대표적인 노동안전 사각지대로 지목했다.

조합원 채용 강요 등 업무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노조 간부는 “정당한 노조 활동을 집시법도 아닌 업무방해와 공갈로 몰아붙이고 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노조는 “윤석열 정권의 일관된 반노동 정책과 건설노조에 대한 도를 넘어서는 탄압이 불러 온 사회적 타살” 이라며, 이렇게 공분을 생생하게 압축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에서 건설사들의 불법하도급 등으로 피해를 입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헌신한 조직으로, 건설노조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임금 체불과 산재 사망을 한층 가중시키는 중대 범죄다. 또 건설노조의 현장 감시 활동이 약화되면 부실시공 등이 증가해 우리 생명도 위협받는다.” 

이날 전국에서 양대 노총 집회가 열린 가운데, 민주노총은 ‘세계 노동절대회’를 열고 7월 총파업 투쟁을 선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설노동자의 분신·사망에 사과하고 책임자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이 날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국제 노동자의 날(International Workers’ Day)에 해당하는 기념일로,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 파업 집회를 연 것을 시초로 한다. 

한국에서는 1958년 대한노동총연맹이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으며, 1963년 4월  17일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법률 제1326호)에 근간하여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994년부터는 다시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반세기 이상이 경과된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를 추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은 피켓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하게 되자, 휘발유로 자신의 몸을 적시고 불을 붙여 분신 항거하였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쓰러졌다. 

전태일의 분신 항거는 정부의 산업화과정에서 희생당하던 노동자의 삶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민주노총 ‘귀족노조’인가? 

“진정한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우리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기득권의 고용세습은 확실히 뿌리 뽑을 것”(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권이 노조, 특히 민주노총을 보는 시각은 우선적으로 이들 지도부를 ‘좌파 운동권 출신’이라는 편향적 사고관에 기초한다. 둘째.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라 비판한다. 민주노총이 기득권 세력이어서 노동시장이 양극화되고 경직되며, 기업활동이 제약받는 등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친기업적 행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진: 노동조합 조직률 14%. 울타리 밖에 있는 86% 노동자들은 안쪽 노동자들을 '귀족노조'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 노동조합 조직률 14%, 울타리 밖에 있는 86% 노동자들은 안쪽 노동자들을 '귀족노조'라 부르기도 한다.

“노동시장은 진짜 이중구조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벽은 확고하고 갈수록 경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말하는 것의 본질은 그 프레임으로 특정 세력을 공격하는 데 있다”며, 노조는 분노의 화살을 현 집권 세력에게 정조준 한다.

이는 일정 부문 여론의 찬성이 적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간주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 대응한 이후 줄곧 노조 때리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렇듯, 경직된 노사 패러다임에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노조를 겨냥한 강경대응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하다. 특히 진영 논리에 덜 얽매이는 2030대와 중도층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한 가시적 결과물은 돈줄 조이기이다. 한국노총이 올해 26억 원 규모의 정부 국고보조금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것이다. 정부가 노조 회계자료 미제출을 빌미로 노동계 압박을 위해 본격적으로 자금 카드를 흔들고 나선 것으로, 노조 도움을 받던 ‘노동 약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28일 한국노총 본부에 보낸 ‘2023년 노동단체 지원사업 공문에서 “보조금 신청에 대한 선정 심사위원회 심사 결과, 지원 대상 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았다”고 통보한 것이다. 

정부는 매년 노사 상생·협력 증진 명목으로 노동단체와 비영리법인을 선정해 국고보조금을 지원한다. 올해는 지난 3월 노동단체 44억7200만원, 비영리법인 11억3천만 원 규모로 지원사업 공모 신청을 받았다. 한국노총도 해마다 26억 원 규모로 지원을 받아왔다. 

최대의 난관 ‘노조법 2·3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해 가결했다. 노동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바꾸고,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무력하게 만드는 ‘손배폭탄’을 금지해야 한다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논의 첫 단계를 통과한 것이다. 

사진: 민주노총 대전본부 관계자들이 근로자의날인 지난 1일 오전 대전시청 남문 앞 보라매공원에서 '2023 세계 노동절 대전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민주노총 대전본부 관계자들이 근로자의날인 지난 1일 오전 대전시청 남문 앞 보라매공원에서 '2023 세계 노동절 대전대회'를 열고 있다.

개정안은 노조법 2조 2호에 사용자의 정의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됐다. 이는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조항으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지위에 놓이게 된다.

이와 함께 2조 5호의 ‘쟁의행위의 정의’의 경우, ‘근로조건의 결정’을 ‘근로조건’으로 문구를 다시 정의했다. 이는 교섭 등의 과정을 통해 미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만 허용된 쟁의행위의 범위를, 현재의 노동조건으로 확대하기 위함이다. 

또 개정안 3조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배청구 제한’의 내용이 반영되지 못했다. 그러나 법원이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에 따라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은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여론’과 ‘법리’, ‘명분’ 등을 근거로 노조법 2·3조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가 분명 감지된다.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非상생의 사람들이 분명 있다. 특히 정부·여당의 행태가 가관이다.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태도의 견지에서 물러섬이 없다. 이와 같은 행태에서 이들이 늘상 말하는 헌법과 법치, 자유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단결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고유의 권리이다. 노동자들이 사회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에 성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당당한 주역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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