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공포 반대 ‘국회의원들 심판’

3년여 이상 지속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간호사들의 고된 업무 환경과 숙련된 간호인력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조명되며 동력을 얻었던 ‘간호법’ 제정이 결국 무산 수순을 밟고 있다.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지난 4월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대통령 재의 요구권, 즉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능단체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또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당일 ‘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 운동본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을 향해 “후안무치한 탐관오리”라고 맹비난했다. 특히 대한간호협회는 오는 2024년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간호법 공포에 반대한 국회의원들을 심판하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사진: 김영경 회장을 비롯한 대한간호협회 임원들이 17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인근에서 간호법 거부와 관련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김영경 회장을 비롯한 대한간호협회 임원들이 17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인근에서 간호법 거부와 관련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법 거부권 행사의 근거로 제시하는 내용들도 대부분 가짜뉴스이며, 반대단체들의 과도한 정치적 구호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왜 선거에서 공약하고 법안을 발의했는지 어떻게 답할 것인가”라고 했다.

덧붙여 “법안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스스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정권의 수준과 한계를 명확히 노정시킨 것”이라며 “억지 논리와 거짓 주장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부정한 윤석열 정권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무엇이 최대 쟁점 이었나 

현재 간호사의 업무는 1951년 제정된 의료법에 의해 규정된다. 하지만 간호계는 기존 의료법이 한국 사회의 고령화 및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 이로 인한 의료비와 사회적 돌봄 부담 증가 등의 난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조명을 받으면서 간호사의 처우 및 근무 여건을 명시한 간호법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다.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주최로 열린 간호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진통 끝에 지난 5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거부권이 행사된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정의와 적정 노동시간 확보, 처우 개선을 요구할 간호사의 권리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입법 과정이 본격 진행되면서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에서는 간호법이 ‘간호사 특혜법’이자 ‘의료인면허강탈법’이라며 정부와 여당에 강한 반대 압력을 가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3개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도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고 맹비판했다.

우선 간호법 제정안 1장 1조에 들어간 ‘지역사회’라는 말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간호법의 목적을 명시한 해당 조항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표현이 들어간다.

간호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의료연대 등은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의료기관 밖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며 이런 규정이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하는 길을 열 것이라고 반대해왔다. 

또 여야 의원들이 애초 발의한 법안 원문 10조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했던 부분도 논란을 낳았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1조 및 10조에 따라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하게 되면 의료 현장에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간호법 10조 2항에서는 의사들 극력 반대의 근거였던 단독개원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여기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문구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간호사 단독개원’ 논란을 고려해 추가된 것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도 의료법 개정 없이는 간호사의 의료기관 개설이 불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간호조무사 관련 사안이다. 의사 단체와 간호사 단체 사이 갈등 뿐 아니라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 제정안의 이런 규정이 부당하다고 지적해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법안 관련 국무회의 의결 결과를 발표하기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해 간호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정해,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 하에 환자 요양을 위한 간호 및 진료 보조를 수행하도록 했다.(12조) 특히 간호조무사 역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전국 조직을 두는 간호조무사협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15조 및 17조)” 

간호조무사 단체에서는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자격 관련 대목에서 ‘특성화고의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자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을 이수한 사람’ 등으로 규정하는 것이 간호조무사 교육을 고등학교나 학원에서 받도록 해 대졸 이상 학력자들이 간호조무사로 지원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학력 하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쟁점은 의료인의 과실 문제이다.

개정안은 의료관련법령 위반으로 제한됐던 기존 의료인 결격사유 조항을 삭제하고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자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자 △금고 이상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인 자로 규정했다. 또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면허 취소 대상에서 제외하는 단서 조항도 마련했다.

정부와 여당, 의사 단체들은 이런 규정이 ‘자격 결격사유를 규정할 때는 필요한 항목만으로 최소한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명시한 행정기본법과 맞지 않고 과잉입법의 우려도 있다고 반대해왔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여러 논란 끝에 결국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설사 간호법이 시행됐다고 하더라도 현장에 당장의 변화가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대한간호협회 김영경 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간호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낭독하고 있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2023.5.16

수정 간호법 제정안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권리 및 책무 등을 규정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시하고는 있지만 너무 추상적인 데다, 구체적인 인력 기준 마련이나 실태조사 등을 할 수 있는 간호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한다는 기존 원안의 내용이 심의 과정에서 누락되었다.

특히 간호법은 전공의법과 비교하며 맹점이 분명 존재한다. 전공의들의 과로 문제에 대한 개선안으로 시행된 전공의법은 제정될 때부터 근무시간 상한선과 과태료 등을 세부적으로 명시했다. 그 결과 전공의들의 연속 근무시간, 평균 근무시간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간호법은 간호 인력의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함에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항들이 부재하다. 따라서 간호법이 제정되더라도 간호 현장에서 극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간호법은 정부가 거부해야 할 이유도 없고 국민 다수의 이해에 위배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 

우수 간호 인력을 양성하고 간호 서비스의 질을 높여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간호법제정은 필수적이다. ▽일반병동의 간호관리료 차등제 개선방안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국 확대 방안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내실화 등 적정 간호인력 수급과 숙련된 간호 인력확보를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의료단체 대표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실질적인 간호인력 확충과 환자 안전, 지역사회 보건 연계가 가능한 법안으로 간호법을 보완하여 조속히 재의결해야 한다. 현재 거부권 행사에 우리 국민들은 직능단체의 호불호를 떠나 적잖이 실망하고 있지만 추후 진전되는 전향적 입법 논의를 예의주시하고 있음에 정치권은 엄청난 긴박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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